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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10. 2024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독후기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독후기


개인적으로 나의 독서 방식은 하나의 책을 여러 번, 그리고 오래 읽는다. 주로 읽는 책은 지루한 동 서양 철학서나 가끔 ‘~론’ 종류의 글을 읽는다. 특별히 『장자』와 관련된 책들과 불교 등 종교에 관련된 책들, 그리고 『도덕경』 관련 책들을,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여러 책 사이로 이리저리 오가며 자주 그리고 여러 번 읽는다. 


편협한 나는 소설이나 수필은 거의 읽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이야기보다 더 끌리는 부분(위에서 말한 영역)이 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소설이나 수필을 읽지 않는 것은 내 독서의 치명적 맹점이지만, 나에게 소설이나 수필을 읽도록 나를 여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시는 자주 읽고 특히 국내 모 출판사의 시집 시리즈는 거의 사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가끔 너무 긴 시는 피한다. 시에 대해 아는 것이 손톱만큼도 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시는 언어의 함축’이라 굳게 믿고 있는 나는, 긴 시에서 함축(24시 품, 사공도 지음, 열한 번째 풍격, 함축(含蓄)- 말로 다 담지 못하는 세계.)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름의 개똥철학이다. 


그런 면에서 김미옥 선생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는 비교적 짧은 글 속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어 참 취향에 잘 맞는다. 특히 짧은 글 속에서 종횡으로 연결된 저자의 지적인 영역은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준다. 책은 319쪽인데 읽으면서 1000쪽이 넘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책 속을 어슬렁거린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책을 쓴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책은 저자의 생각이 지나치게 감춰져 있기도 하고 어떤 책은 얼마 읽지 않아도 저자의 생각이 보인다. 둘 다 호, 불호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저자 성향의 문제일 뿐인데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는 전자에게 더 끌린다. 저자의 생각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어떤 경우에는 나에게로 전이되어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 곧 나를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속에서 3~4일을 어슬렁거렸다. 저자는 저만큼, 혹은 이 만큼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가끔 안갯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다가 사라지곤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책들은 매우 생소하거나 아주 가끔 스치듯 만난 책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저자의 신묘한 술법 탓에 어슬렁거리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소득도 없이 책을 덮었다. 하지만 그것이 독서라는 것을 나는 안다.


돌아가신 시인 오규원은 그의 시집 ‘두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발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 


3~4일을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속에서 두리번거리다 나의 세계로 돌아왔다. 나는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고, 동시에 저자 역시도 뭔가 애써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 다시 이 책 속을 어슬렁 거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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