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Jul 04. 2022

중세의 가을

《중세의 가을》요한 호이징가, 이종인 역, 연암서가. 2012


일요일 하루 종일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읽으며 더위를 잊는다.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스위스의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와 함께 근대 공간의 탁월한 문화사가로서 중세와 르네상스에 대한 평가와 분석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네덜란드 학자이다. 라이덴 대학교수, 학장을 거쳐 왕립 과학 아카데미 역사문화부 위원장, 국제연맹지식협조위원회 부의장으로 활약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군에 감금되어 종전 직전에 사망했다.


《중세의 가을》(1919)을 비롯해 《에라스뮈스》(1924), 《호모 루덴스》(1938)등 기념비적 저서를 남긴 그는 윤리적, 도덕적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역사를 통찰하여 문화와 예술을 통해 인간의 집단적 삶에 숨은 정신과 의식, 감정과 태도를 찾아 재구성하는 영혼의 모험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중세의 가을; Herfsttij der Middeleeuwen》이라고 명명한 이유를 ‘호이징가’ 스스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중세시대는 흔히들 말하는 암흑기를 상징하는 겨울이 아니라 중세는 분명 저물어 가지만, 마지막 그 아름다운 붉은 석양을 남기는 가을처럼 아름다운 시대였다.”


총 22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대정신과 위계질서,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이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또한 중세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종교적 사상이 중세인의 삶 속에서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호이징가’의 판단에 의하면 르네상스는 중세를 경멸한다. 그 배경에는 르네상스가 미신적인 종교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스콜라적(형이상학적) 이상주의로부터의 결별하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한다고 ‘호이징가’는 생각하였다. 심지어 르네상스 인들은 ‘신의 이름으로’ 펼쳐진 ‘중세’라는 시대가 사실은 ‘신이 버린’ 시대였다라고 평가한다. 이를테면 서양의 발전(르네상스 이후의 발전)은 기독교 덕분이 아니라 기독교를 벗어났기에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호이징가’는 르네상스(종교적 집착으로 점철된 중세를 비판하는 Paradigm)의 문화사적 위치와 역할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긍정적인 변화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호이징가’는 “르네상스는 오히려 중세 말기에 불과하여 오히려 그 시기에 파괴된 것이 더 많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단적으로 예를 든 것이 라틴어의 화석화이다. 라틴어는 르네상스 시기까지 자연적인 변화를 겪으며 사용되었던 살아있는 언어였는데, ‘고전 순수주의’라는 강박관념(중세를 거치며 변화된 라틴어를 오염된 것으로 인식한)으로 르네상스를 거치며 이를 화석화시켜버린 것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호이징가’는 중세시대에 대한 기존의 암울한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중세가 몰락한 것은 비이성적 미신적 종교와 혼란에서 야기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예정된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세(인) 시대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갈망이 무엇보다 지배적이었다고 ‘호이징가’는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이란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과 신변의 보호까지 아우르는 매우 광범위하고 이상적인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중세의 기독교적 맹신과 그에 따른 구속과 어둠이 늘 불안정한 시대상황으로 전개되면서 다가오는 ‘공포’를 느낀 중세인들의 본능적인 대처 방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중세인들은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신뢰를 갖지 못했고, 이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는 중세인의 이념을 왜곡과 변질로 몰아갔다. 대표적으로 중세의 종교와 정치의 도를 넘는 유착,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널리 횡행했던 마녀사냥, 마침내 십자군 전쟁까지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호이징가는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더불어 ‘호이징가’는 고대시대에는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혹은 놀라울 만큼 잔혹하고 불평등한 이념들과 사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동일하게 중세시대를 평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중세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단편적인 시각으로 중세를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뜻 밖의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