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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말복, 광복절 하루 전.

by 김준식

8월 14일 말복, 광복절 하루 전.


1. 복날


복날은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날이다. 이 날은 경庚일 인데 경은 금金을 뜻한다. 즉 복날은 이 쇠의 기운이 으뜸이 되는 날이다. 쇠의 기운은 더위와 연결되는데(당연히 겨울에는 추위와 연결된다.) 이 쇠의 기운을 완화할 수 있는 것이 토土, 즉 흙의 기운이다. 초복과 중복은 정확하게 10일이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천간이 10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복은 입추를 기준으로 한다. 올해는 ‘입추’(8월 7일)로부터 첫 번째 경일庚日인 14일이 말복이 된다. (14일은 庚戌일이다.)



중국의 한자 기원에 의하면 복伏날의 엎드릴 복伏은 복예伏瘞(묻을 예)의 뜻으로 전쟁에서 죽은 무사를 땅에 묻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은 병사만 묻으면 땅의 저주가 있다 하여 그 땅의 저주를 막기 위해 개를 함께 묻었다. 개는 토土의 기운이라 땅과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또한 바람을 타고 침입하는 풍고風蠱(벌레 고; 이를테면 병균)를 막기 위해 사대문에 계절마다 개의 시체를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었다. 개는 부정을 쫓아낼 수 있는 동물로 여겨지고 동시에 강력한 흙의 성질을 가진 동물로 여겨졌다. 그러니 복날 개를 먹는 것은 복날의 쇠(금) 기운을 완화하여 더위를 누그러뜨리고 건강한 가을을 맞이하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복날 개를 먹는 것이 단순한 악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시대는 변했고 개는 이제 부정을 막는 짐승이 아니라 반려 동물이니 이는 개인의 취향에 따를 뿐이다.



올해는 말복 다음 날이 광복절이다. 광복절이 되면 이 나라는 온갖 이야기가 난무하고 진실과 거짓이 섞여 혼돈의 극치를 이룬다. 개고기를 걸 수도 없는 이 혼란의 시대..... 진실은 하나인데 그것을 가리는 온갖 몰염치와 몰상식이 보통의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 바로 공화空華다!!



공화空華란 번뇌로 생기는 온갖 망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본래 실체가 없는 현상 세계를 잘못된 견해와 아집에 사로잡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말하는데 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간혹 허공에 마치 꽃이 있는 것처럼 허상을 잘못 보는 일에 비유한 말이다.



해방 79년, 여전히 대한민국에 이 공화가 가득하다. 실체 없는 거짓이 실체를 능가하고 오히려 우리 모두에게 실체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무엇이 공화인지 무엇이 실체인지 그 구별조차 모호한 세상이 지금이다. 눈병은 마침내 치료되지만 정신의 눈병인 공화는 바로잡기 어렵다.


2. 광복


매년 광복절, 태극기를 달지 못하는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다. 1942~3년 만주에서 항일 전투 중에 돌아가신 조부의 삶을 완전히 신원伸寃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미 손을 놓은 지 오래여서 개인적인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여러 난관에 가로막혀 있다. 조부가 신원이 되려면 남북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통일이 가능하기나 할지조차 의문이 든다. 어쨌거나 그날이 오면 나는 태극기를 달 것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 삶의 8월 15일을 돌이켜 보면 국민학교 땐 광복절에 태극기를 그려 손에 들고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며 무슨 얘긴지 모르는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했고, 청년 시절에 역사를 공부하며 해방이 자주적 노력의 결과로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해방은 남한을 지배하던 권력이 일제에서 미군정으로 바뀐 것이고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은 그 지도층이 일제 강점기 지도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의 주구들은 해방된 나라에서 친미로 교묘하게 얼굴을 바꾸고 입법, 사법, 행정, 군 등 이 땅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였고 오히려 식민지 시대보다 착취의 구조는 더욱 교묘하고 강력해졌다. 그들은 자신들 권력의 영구 유지를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온갖 선전매체를 동원해 민중의 각성을 막았고 여전히 막고 있음을 안다. 이런 세상에서 민중들은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 모순된 구조를 인식하고 변화를 위한 투쟁이 진정한 해방으로 가는 길임을 알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것에 깊은 절망을 느꼈고 세월이 갈수록 절망은 깊어지기만 한다. 최근에는 그들이 아주 본색을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일제 강점기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며 멀리 타국에서 피를 뿌리신 우리의 선혈들이 땅을 치고 피눈물을 쏟을 일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일은 암흑으로부터 빛을 다시 찾은 날이다. 문득 이 말이 생각난다. 빼앗긴 것은 찾을 수 있지만 그냥 내 준 것은 다시 찾을 수 없다. 내일은 광복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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