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9)
1. 실존
우리는 살고 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Geworfenheit被投)졌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삶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현존재인 우리는 각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상황을 우리는 실존(독Existenz, 영 Existence)이라고 한다.[1]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의 본질은 그의 ‘실존’에 있다”(Das <Wesen> des Daseins liegt in seiner Existenz.)라고 한다.[2]이 말에서 ‘실존’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음과 같다. 즉 현존재의 존재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현존재를 향했을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3]
이 말은 현존재인 인간은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의 배경에는 존재의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실존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이전 시기의 모든 철학에서는 늘 존재를 실존의 우위에 두려고 했다. 따라서 존재는 언제나 보편적이고 동시에 이성적이어야만 했다. 하이데거는 이 원칙을 파기하고 실존이야말로 본질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려 했다.
실존의 문제는 현존재의 자각,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 현존재의 자각은 자신으로 사는 것과 자신으로 살지 않은 두 가지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자신으로 살지 않는 좋은 예는 자신 외에 세상의 다른 일에 골몰하여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현존재의 자각을 대상으로 할 때 그 상황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실존적’이라고 부른다.[4]
2. 범주(kategorie)
하이데거가 말하는 실존적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현존재가 자신으로 살던, 혹은 무엇인가에 골몰하여 자신을 잠시 잊어버리던 간에 그 자체가 완벽하게 ‘실존적’이다. ‘실존적’에서 더 나아가 ‘실존론적(Existenzial)’인 관점도 가능한데, ‘실존론적’이라 함은 현존재가 현존재인 자신에 대한 구조적 성찰 혹은 분석을 말한다.[5]
이른바 ‘실존론적 분석’은 ‘실존범주(Existenzialien)’[6]에 입각하여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실존범주’란 현존재의 모든 존재방식과 존재양식[7]을 말하는데 이것은 일반범주(Kategorie)[8]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범주’, 즉 ‘범주’의 의미는 ‘비현존재적 존재자’(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 대하여 말하거나 표현할 때 필요한 언어의 기본적인 구조를 말한다.
[1] SZ 11판, 1967. 12쪽.
[2] 앞의 책. 42쪽.
[3]『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2003. 49쪽
[4] SZ 11판, 1967. 12쪽.
[5] 앞의 책. 13쪽.
[6] 앞의 책. 45쪽.
[7] ‘실존범주’는 하이데거의 독창적인 개념으로서 ‘현존재의 존재 성격은 실존성에 의하여 규정되기’ 때문에 ‘실존범주’라고 불렀다. 즉 현존재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이 바로 ‘실존범주’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사태가 곧 실존 범주인 것이다.
[8] Kategoriai(독, 범주)의 본래 의미는 그리스어에서katēgoria로서 ‘반대하다’. ‘비난하다’. ‘제시하다’.에서 출발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주장하다’. ‘명명하다’라는 의미로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