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8)
현존재, 실존, 실존적과 실존론적
1. 현존재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현존재는 “스스로 있으면서 이 있음 자체를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는 존재자”(das Seiende, dem in seinem Sein um dieses selbst geht)[1]이다.”
현존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이다. 따라서 현존재는 묻는 존재자이면서 동시에 물음의 대상이 되는 존재자이다. 물론 이때의 물음 또한 현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이다. “현존재의 존재는 그때마다 나의 존재이다."[2] 즉 그런 현존재에게 존재란 매 순간마다 그 자신의 존재이다.
이것이 현존재의 각자성(Jemeinigkeit)이다. 현존재의 존재가 나의 존재인 만큼 각자성은 당연한 이야기다. 따라서 하이데거의‘존재론’은 지금까지의 존재론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성찰하고 분석하는 존재론이다.
지금까지(하이데거 이전)의 (보편 지향적 철학이) 존재론에서 현존재의 '개별화의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각자성’에서 출발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는 개별성의 문제는 처음부터 제기될 수 없다. 즉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모든 현존재가 각각 자기의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성에 매몰되면서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보편성'의 문제는 당연히 발생한다.(각자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당연하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보편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방향 전환이 필요했다.(가능적 존재로서의 현존재를 입증하여 보편성을 획득하고 동시에 넘어서는 방식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무생물, 우리 주변의 생물(가축, 야생동물)등은 객관적이고 실재적 존재자이다. 동시에 현실적 존재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을 인간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능성(Möglichkeit)[3]이다.
즉 인간은 앞을 향해 사는(미래를 예측하면서) 유일한 가능적 존재이므로 인간에게는 언제나 현실성보다 가능성을 우위에 둔다. 이를테면 현존재인 인간은 가능적 존재자이다.
가능적 존재자의 특징은 선택에 있다. 이를테면 본래적 존재로 사는가 비본래적 존재로 사는가 하는 삶의 양식을 스스로 선택한다. 자기 존재를 본래적으로 선택하는가 비본래적으로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가능적 존재자인 현존재 각자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본래적 삶이란 일상성 속의 세속에 사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매우 독자적으로 자신을 회복하여 자기를 가능적으로 기투企投(Entwurf)하는 자각적 삶의 양식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본래적 삶이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선택할 때만 성취되는 존재양식이다.
그러면 비본래적 삶이란 무엇인가? '처음엔,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듯이'(zunächst und zumeist)[4]의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 세계 내부적 존재자에 골몰하여 분주하게 사는 나머지, 자신의 존재와 가능성을 잃어가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일상성(Alltäglichkeit)은 모든 사람이 각자 그렇게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 순간마다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맞춰 스스로를 해석하고 그 해석된 여러 개의 자신들 속에서 적합한 자신을 선택한다. 따라서 비본래적 삶이라고 해서 삶의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분석을 '처음엔,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듯이'라는 지극히 평균적 일상성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1] SZ Elfte, unveränderte Auflage 1967. 41쪽(이하 SZ 11판, 1967.로 표기)
[2] SZ 11판, 1967. 42쪽
[3]앞의 책 43쪽
[4]앞의 책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