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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30. 2024

후설과 epoché(판단중지) (1)

후설과 epoché(판단중지) (1)


1.     후설


에드먼드 구스타프 알브레히트 후설(Edmund Gustav Albrecht Husserl, 1859년~1938년)은 현재의 체코(당시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Prostějov(프로스테요프)에서 독일어권 중산층에 속하는 유대인 옷감 상인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역시 현재의 체코 영역인 Olomouc(올로모우츠)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천문학, 수학, 물리학을 공부했다. 


1878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설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현재의 훔볼트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다. 그곳에서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되는 프리드리히 파울센(Friedrich Paulsen, 1846년~1908년)의 철학 강의를 듣게 된다. 하지만 1881년 수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 비엔나 대학으로 학교를 옮기고 여기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1884년 비엔나 대학에서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년~1917년)의 철학과 심리학 강의에 참여하면서 브렌타노에 깊이 공명한 후설은 평생을 철학에 헌신하기로 다짐한다. 1887년 할레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여 1901년 괴팅겐 대학으로 옮겨 이후 14년을 재직하게 된다. 1916년 후설은 프라이부르크의 알베르트 루트비히 대학교에서 신칸트주의 하인리히 리케르트(Heinrich John Rickert, 1863년~1936년)의 교수직을 맡아 연구를 계속하였다. 1938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다.


그의 초기 철학은 수학과 심리학, 철학을 결합하려고 시도했다. 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후설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수학의 기초를 분석하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곧 후설은 그의 『논리학 연구』의 첫 번째 부분인 『순수 논리학 서문』 에서 논리학과 수학의 심리학적 관점을 스스로 철회한다. 


2.     후설 철학의 과정


19세기는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세기였다. 이전 시대 최고의 학문의 자리에서 통섭했던 다양한 학문들이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하나둘씩 철학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당시 철학자들은 아마도 매우 큰 위기의식에 빠졌을 것이다. 물론 세기를 풍미했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1900년) 같은 철학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확실히 19세기는 철학의 위기가 분명했다. 


그 분위기에서 생겨난 새로운 철학이 분석철학이었다. 분석철학은 프레게(Friedrich Ludwig Gottlob Frege, 1848년~1925년)로부터 출발한다. 분석철학이란, 이제 여러 학문적 분류로 갈라진 철학의 위기를 철학 그 자체에 시선을 돌려 지금까지의 관성적이었던 모든 철학을 모두 시험대에 올려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자는 방향이었다. 


즉 이전 시대의 철학처럼 특정한 관점을 정하고 그 관점에 따라 튼튼한 이념을 구성하고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의 방법론에 눈을 돌리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철학 자체의 논리적, 그리고 언어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철학 속에 개입되어 있는 비 철학적 언어, 논리적 요소를 털어내고 순수하게 철학적 언어와 논리로 재편하자는 것이었다. 출발점에 있는 프레게가 처음 수리논리학자였다는 것으로 짐작하듯이 철학의 개념, 법칙으로부터 출발하여 언어철학에 이르는 길을 개척하여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년~1970년)과 무어(George Edward Moore, 1873년~1958년)에 이르는 분석철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었다.


19세기 철학의 위기라는 흐름에 동조하면서도 분석철학과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한 또다른 철학적 방법이 바로 현상학이었다. 현상학은 위 분석철학이 문제로 제시한 철학에 개입된 다른 요소들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분석철학과 완전히 다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상학은 사실 논리학과 심리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두 명의 선구자는 바로 체코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던 볼차노(Bernard Placidus Johann Nepomuk Bolzano, 1781년~1848년)와 독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년~1917년)였다. 


볼차노 논리학의 요지는 선명하다. 즉, 명제가 나타내는 ‘의미’는 그 진위에 상관없이 주관에서 독립하여 그 ‘자체’로 성립한다고 생각하였다. 명제에 대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인간의 인식이나 판단과는 별개로 명제 자체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다.  


브렌타노는 이와 같은 ‘객관’적인 진리의 심리학적 포착을 중심문제로 삼는다. 그는 의식이란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점에 주의하여, 의식현상의 본질은 대상을 ‘지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브렌타노의 제자 알렉시우스 마이농(Alexius Meinong, 1853-1920)은 이와 같은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관점에 의거하여 대상의 본질구조를 밝히려 했다. 그의 대상론은 보통 표상되는 현실적인 대상만이 아니고, 다만 사유될 수 있을 뿐인 ‘비현실적인 것’도 충분한 대상으로서 인정하는 것이었다.  


후설은 브렌타노의 의도성 개념을 채택한다. 의도성 개념이란 개인적 성찰을 통해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파악하는데 이것을 ‘현상(Phänomene)’이라고 부른다. 현상의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징은 개인의 의도적인 경험이 사물에 대하여 ‘의식’ 또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으로서의 존재와 사물로 표현되는 존재의 기본 성격을 의도성이라고 정의했는데 이것을 후설이 수용한 것이다. 


후설은 위 기초적 의미에 부가하여 수많은 사례 분석을 통해 의도성을 현상학의 독립적인 중심 개념으로 확장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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