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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Nov 13. 2024

마지막 거인을 읽고......

1.     寓言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반班 특색활동으로 그림 이야기 책을 읽기로 하고 그 두 번째 책(처음 책은 검은 새),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플라스(Francois Place, 1957~)의 『마지막 거인』(Les Derniers Géants)를 읽었다. 감동보다는 슬픔(정확하게 슬픔은 아니다.) 비슷한 것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발문跋文격에 해당하는 최재천 교수의”스스로 자기 집을 부수고 있는 인간들에게”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언寓言은 다른 사물, 사건에 비유하거나 또는 그 취지에 의지해서 글쓴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서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솝, 부처, 장자, 예수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마지막 거인』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거대한 슬픔의 이야기다.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학문적 연구를 위한 열정은 선량하고 심지어 아름답기조차 하다. 주인공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스모어’의 열정과 탐구 정신은 19세기 인류의 전범典範이었고 문명의 발전, 좁게는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21세기 지구는 19세기 지구로부터 200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45억 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모든 균형이 깨지고 흩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모든 일의 뒤에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스모어’(이 이야기의 주인공)류의 열정과 순수와 믿음이 있었다. 거대한 역설이다. 


2.     슬픔


의도하지 않았지만 '루스모어'의 열정적 행동은 우리가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정복자, 지배자의 행동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각해야만 한다. 흔히 말하는 사려 깊은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내 삶을 위한 일이 나 외의 존재에 대한 침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삶에 대한 진지한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철학은 자아성찰이자 세상 모든 것과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태도다. 그 작은 성찰이 결여된 '루스모어'의 행동이 가져온 것은 파국이며 절망이며 절멸이었다.


작은 이야기 책을 덮으면서 나에게 전해져 온 이 슬픔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무모한 열정'과 '미화된 만용'의 결과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슬픔이다. 이념에 의해, 이익을 위해, 평범한 악에 의해 지금까지 감춰지거나 덮인 지독한 슬픔이다. 


고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들과 이 이야기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슬퍼 보이지 않았고, 다만 거인의 절멸이 '루스모어'의 행동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억지로 내 생각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들의 생각으로 이 거대하고 지독한 슬픔에 당도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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