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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27. 2018

불안의 책

미세먼지, 봄

여러 가지 일로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컴퓨터가 없는 공간은 참 당황스럽고 어색하다.  


2월 27일 하루 종일 하늘이 뿌옇다. 요즘 아이들 말로 실화다. 이래 가지고 어찌 봄을 맞이할까? 슬프기 조차 하다. 물론 예전에도 봄은 불투명이었다. 딱히 선명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숨 막힐 정도의 먼지라도 없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민 가고 싶다. 하기야 어딘들 좋을까! 이 숨 막히는 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가끔씩 아는 것이 불확실 때가 있다. 늘 쓰던 단어의 뜻이 가물가물해지고, 절대로 옳다고 판단했던 진리도 한순간에 흔들리는 것을 깨닫는다. 나이 탓인가? 의식이 가끔씩 습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관념조차 상대적임을 알게 된다. 믿음이나 신념도 이제는 마음먹기에 따라 변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The Book of Disquiet(불안의 책 Livro do Desassossego ; Fernando Pessoa 작)를 읽으면서 지금 내 삶을 가만히 본다. 마치 내가 몇 년 전, 어쩌면 20대와 30대 한 때 써 놓았던 일기장을 주워 읽는 듯한 이 旣視感!  



우리는 우리 마음의 행적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을까? 오랫동안 교제한 이와 흉금 없는 대화를 나누었더라도 그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가장 믿었던 지인으로부터 뒤통수 맞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듣고 또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을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그것은 한 때의 단순한 취향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즉, 우리는 의지와 욕망을 그저 마음이라 여겼고, 내면보다 외양을, 무의식보다 의식을, 그리고 즉물적 본능을 중시한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마음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뤄졌음을 밝힌 ‘융’의 심리학 이론을 덧붙인다면, 우리는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처럼, 마음 일부가 우물 속이나 어쩌면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책, ‘불안의 서’에서 '소아레스라는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끝없이 바꾸어 쓴다. 소아레스는 저자인 ‘페소아’의 무의식적 자아이자 뒤 음절 소아는 heteronym - 동철 이음 이의어(철자는 같으나 음과 뜻이 다른 단어, 예를 들어 ‘찢다’는 뜻의 tear와 ‘눈물’이라는 뜻의 ‘tear’)이다. 거의 70개나 되는 그의 다른 이름을 통해 소아레스 자신은 자신의 내면을 한 꺼풀씩 벗긴다.  



그의 글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기승전결과 주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느낌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작가의 태도에서 불현듯 우리는 우리의 내면과 만나게 된다. 이제는 50대 후반에 들어 선 나의 늘어진 의식에서 찾기 어려운,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 조차 떠올리게 된다. 



내일은 2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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