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그리고 프레이밍
금요일 6교시 사회문화 시간, 어제 수능 감독의 피곤이 여전한 가운데 수업을 들어갔더니 한 아이가 대뜸 이런 질문을 한다.
“샘! 내년에 저희들이 수능 칠 때는 나라가 좀 조용할까요?”
내가 역으로 물었다.
“지금 나라가 시끄럽니?”
아이가 푸석하게 대답한다.
“아닌가요?”
……
그 아이에게 나라의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것이 시끄러운지 아닌지는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매우 객관적인 지표와 충분한 자료 없이 막연하게 나라가 시끄럽다는 말을 질문의 전제로 삼는 것은 위험하거나 오류일 수 있다고 말한 뒤 몇 가지 이야기를 추가했다. 먼저 그 아이의 질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OO아! 너는 이미 질문할 때부터 이 나라가 조용하지 않다는 전제를 하고 질문을 했다. 만약 내가 너의 질문에 어떤 식으로든 답한다면 나는 너의 전제조건인 조용하지 못한 나라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일단 너의 질문은 분명하지 않거나 대단히 모호한 전제를 이용하여 물었기 때문에 질문의 유효성이 상당 부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역으로 네게 물었다. 나라가 시끄러운지를 물었다. 나의 역 질문은 너에게 자신의 질문에서 전제해 놓은 조건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설령 너의 질문에서 나라가 조용하지 않다는 것이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인정된 통념이라 하더라도 너의 판단이 아닌 통념에 근거하여 질문하는 것은 잘못된 발문이 될 가능성도 크고 질문의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게, 질문하는 자신도 확실하지 않은 일반적인 통념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는 질문일 수 있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1917년 4월 러시아 볼셰비키의 리더 레닌은 2월 혁명의 반동을 맹 비난하며 저 유명한 4월 테제(April Theses)를 발표한다. 사실 2월 혁명의 결과는 참담했다. 케렌스키의 집권으로 로마노프 왕조는 슬그머니 다시 복귀하고 케렌스키 본인은 본인의 영달을 위해 혁명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었다. 결국 4월 테제로 다시 재 점화된 혁명은 11월 혁명으로 레닌이 집권하면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른바 공산주의적 국가체계의 시작)이 완성된다.
4월 테제의 핵심을 오늘날 용어로 바꾸면 일종의 프레이밍(framing)이었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2006년에야 비로소 발표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 Daniel Kahneman의 행동 경제학에서의 프레임 이론은 1978년에 처음 발표되었다.) 프레임이란 현대인들이 정치ㆍ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
우리 사회가 조용하지 않다는 것이 완전하고 증명 가능한 사실일 수는 없다.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기준이 작동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아이들이 그것들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동시에 그 자의적 해석을 확장시켜 자신의 가치체계로 삼는 경우를 자주 본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주는 다양한 신호는 사실 이들에게 벅찰 만큼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교사의 개입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하여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사회문화 시간이니 이 정도 이야기는 가능하다.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눈만 껌뻑거린다. 더러는 잔다. 그렇게 일주일 수업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