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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Nov 14. 2024

마지막 수능 감독

마지막 수능 감독


교직 생활 마지막 수능 감독을 하며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하루 종일 서서 지냈더니 일단 많이 피곤하다. 물론 자리가 제공된다.(이 일도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교사들의 민원으로 겨우 생색을 낸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능 시험장 의자 민원을 3회 정도 제출하였다.) 그래도 종일 서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민한 아이들 때문에 숨소리 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조금만 불리해도 민원이 빗발친다. 이 엄청난 일을 고등학교 교사들은 해마다 말없이 치르고 있다. 내년엔 이 일을 하지 못한다. 정년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1. 선발의 주체와 선발의 객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은 당연히 대학이다. 따라서 대학생의 선발 주체는 대학이다. 고등학교 교사는 3년 동안 학생부를 기록하여 대학에게 제공한다. 학생부에는 성적(교과 성적과 교과별 세부 특기 능력 등)과 행동발달 상황, 창의적 체험활동 등 3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이 망라되는데 고등학교 교사는 이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고 이것을 통해 대학교는 그들의 학생을 선발한다. 즉 우리는 대학생 선발의 객체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를 수행할 능력을 검정하는 시험이니 이 시험의 주체도 당연히 대학이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이 시험의 출제와 채점 그리고 기타 운영 권한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KICE)이 가진다. 즉 국가가 슬그머니 개입하는데 여기서부터 일이 틀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체는 평가원이 아니라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연합하여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여 그 성적을 토대로 대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데 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곳에서 대학들이 해야 할 역할을 대행하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난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수능 문제를 고교 교사들이 출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험을 시행함에 있어 애먼 교사들을 이용하는 것은 참 기분이 좋지 않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전국의 수능 감독 교사들은 너무나 힘든 이틀을 보냈다. 그래도 어제는 오후 출장(가지 않고 소속 학교에 남는 교사들도 있다.)을 가서 시험 감독 연수를 듣고 오늘은 새벽 6시 30분까지 감독학교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전체 7시간 이상을 줄곧 서서 감독) 시험 감독을 해야 하는데 내일은 금요일이니 휴무도 아니다. 거기다가 조금의 실수도 민원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때 행정 소송 외에 민사 소송에 패소할 경우 그 책임은 온전히 교사 개인의 몫이 된다. 


이 일을 나는 교직 생활 내내 매년 수행해 왔다. 뭔가 일이 크게 틀어져 버린 느낌이다. 국가가 대학 선발을 위한 시험에 대한 제반 권한을 담당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일에 고교 교사들을 몰아넣는 일도 참으로 이상하다. 수능 출제 위원의 경험(교직 생활 내내 두 번의 경험이 있다.)에 의하면 출제하는 각 과목에 최종 책임자는 대학 교수였다. 그러면 시험을 시행할 때도 일정 비율에 따라 교수들도 감독을 하는 것이 맞다. 대학 교수들은 수능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면서 시험 감독에는 단 한 명의 교수도 참여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고교 교사가 3년 내내 가르치고 학생부를 써서 수능까지 출제하고 그 감독까지 담당하여 대학에게 그 결과를 올리는 것은 전제군주 시절의 군주와 신하의 모습이 연상된다. 대학이 상급기관이라는 법률적 근거가 있는가? 국립대 총장이 장 차관급이고 시도 교육감은 차관급이니 유추해석에 따라 대학이 상위 기관이라면 틀리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각 기관에 소속된 교사와 교수의 위치가 상하 관계는 아니다. 수능 시험을 포함한 대학 입시 제도로만 본다면 지금 우리는 완전히 상하 관계에 있고 동시에 이 상황을 타파할 그 어떤 법적 근거도 가지지 못했다. 고교 교사로서 참 안타깝고 아프지만 현실이다. 


2.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들


수능 출제 및 시행에 대학 교수의 참여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비율을 정해 출제처럼 감독도 부담해야 한다. 전적으로 고교 교사에게 부과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 



수능에 대한 권한을 국가가 가졌으니 수능 감독에 대한 각종 민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즉 행정 소송 이후에 민사 소송의 경우에도 모든 것을 당해 교사의 책임으로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 교수들의 참여가 불가능하고 상황이 어렵다면 수능 감독 이후 고등학교에 한해 하루 휴무일을 정하라. 고등학교만 쉬는 날로 해도 아무 문제없다. 수능을 시행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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