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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달 Aug 09. 2022

여름의 접촉

내 몸은 소중하지 않기에, 나는 관대하다

여름.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예민해지는 계절이다. 마을버스는 주로 작은 크기이고, 그 작은 크기로 큰 버스가 드나들 수 없는 골목길을 왔다갔다 한다. 그 와중에 탑승객들은 서로 어쩔 수 없이 스치고, 부딪친다. 겨울에는 그런 접촉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어차피 나의 몸인 피부는 두꺼운 옷으로 보호된다. 모르는 사람의 접촉에 그나마 너그러워진다. 하지만 여름은 다르다.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다보면 추운 계절 동안 숨어있던 맨살이 무방비 상태로 드러난다. 낯선 사람이 접촉을 일으키면 그 자체로도 신경쓰이는데, 뜨겁고 축축한게 살갗에 닿으면 불쾌감이 절제할 틈도 없이 튀어나온다. 불쾌감을 피하기 위해, 혹은 불쾌감을 타인에게 주지 않기위해, 나는 좌석에 앉아 겨울 때보다 더 다리를 오므리고 팔을 오므린 채 앉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이내 무의미해진다. 밀집도가 높은 마을버스에서 사람들은 나를 밀고 치고 스치고 지나간다. 등산을 갔다 온 아저씨는 자신의 땀을 닦은 수건을 흔들며 마을버스를 타다가 앉아있는 내 팔을 쓸고 지나갔고. 오늘은 우산을 접고 탄 아주머니는 차가운 비가 남아있는 우산을 다리를 쓸고 갔다. 


화가났다.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화가 났다. 물론 아무한테도 소리지르며 화내지 않았지만(그런 성격이 절대 못된다), 최대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론 과장스럽게 축축한 부위를 닦고 또 닦았다. 버스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산을 접은 채 있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무신경할까. 의문이 섞인 화였다. 왜 땀이 젖은 수건을 흔들고 다닐까. 왜 우산을 몸에 딱 붙여서 들고 다니지 않을까. 이 화는 이내 나에 대한 화로 번졌다. 나는 왜 이토록 예민한 존재일까. 왜 이토록 예민해서 누군가 나의 경계(피부면)를 건들거나 침범해오면 한참을 신경쓰고 그 감정에 매몰돼있는 걸까. 내가 다른 사람의 접촉에 예민한 이유는 나는 누군가의 침범을 받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서 인 것 같다. 아무도 날 해치지 말아야 하고. 건들지 말아야한다는 생각. 나는 항상 깨끗한 그 상태로 유지되어야하고, 그 정도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


흔들리는 마을버스에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를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많은 접촉과 침범에 관대해 질 수 있을까? 내 몸에 뭐가 묻어도. 누가 내 몸을 치고 가도. 내 몸에 우산에 묻은 비를 흩뿌리고 가도. 땀에 절인 수건을 대고 가도. 그래도 상관없는 몸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면 타인에게 조금은 너그러워 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의 몸을 홀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말로 자신의 몸에 무신경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한 사람을 떠올리면 폭우가 쏟아지던 바로 어제 본, 이름 모를 여자 한명이다. 어제의 나는 102년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에 조금이라도 안 젖기 위해 옷을 걷어 올리고. 우산 속에 나를 접어서 집어 넣었다. 그래도 몸은 비에 젖어가자 어쩔줄 몰라했다. 그런 나와 달리 이름모를 그 여자는 우산은 그저 쓰고 갈 뿐. 내 몸이 폭우에 젖든. 바지 밑단이 젖어 진한색으로 물들어가든 말든, 상관없이 난 내 갈 길을 간다는 마음으로 처연하게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여자를 보며 ‘바지 다 젖어서 어떻게. 춥고 더러워졌겠다’이런 생각을 계속했다. 


그런 사람들. 그들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몸에 무신경해서라기 보다는, 겸허한 이유로 자신의 몸을 홀대한게 아닐까. 내 몸이 그렇게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까. 혹은 내 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낯섦을 굳이 배척하고 혐오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자신의 존재를 낮추기에 타인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어쩌면 자신의 몸에 무신경한 사람들이 전혀 아닌. 


갑자기 나도 내 몸을 홀대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났다. 내 몸은 소중하지 않다. 내 몸에 진흙이 묻을 수도 있는 거고. 누군가의 땀이 묻을 수도 있는 거고. 차가운 빗방울이 묻을 수도 있는 무언가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마을버스에서 내려 폭우가 쏟아져도 어제 본 처연한 그 여자처럼 걸어나갔다. 굳이 치맛단을 잡고 올려서 옷이 젖지 않도록 전전 긍긍하지 않았다. 젖든 말든. 그냥 걸어나갔다. 내 옷들은 차가운 비에 젖어갔고, 내 몸에도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다. 이상하게도 그건 나쁜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더 나아가 우산까지 집어던지고 폭우를 그대로 느끼고 싶었지만, 그러면 엄마가 놀랄까봐 일단 거기까지 했다. 조금은 관대한 몸을 가지게 된 것 같은 날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몸에 대한 접촉과 침범은 다른 사람과 생활하면서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경미한 것들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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