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배송된 택배를 보며
집 공동 현관에는 편지함이 있다. 계단에 오르기 전. 나는 항상 편지함을 유심히 살펴 본다. 뭐가 왔나? 안 왔나? 대개 아무것도 와 있지 않다. 오더라도 무언가를 알리는 고지서일 때가 많다. 발신자는 대개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부 혹은 기관들이다. 어제 밤. 집에 돌아오는데 편지함 위에 작은 택배 상자가 올려져 있었다. 상자에는 UPS라 써있었고, 외국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이런거 시킨 적이 없는데"라며 '혹시 누군가 내게 감짝 선물을 보낸건가?'하며 상자를 골똘히 봤다. 수신자 이름에는 전에 살던 사람의 이름이 영어로 찍혀 있었다. 역시나 내께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실망을 하고 있는걸까?
계단을 올라가며 생각했다. 어차피 내꺼가 아닌데, 왜 나는 아쉽지? 나는 오배송 된 택배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항상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동창일 수도. 외국에서 함께 생활했던 외국 친구일 수도. 혹은 예상조차 안 가지만, 이전에 나와 관계를 맺었던 누군가가 보내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발신인. 오랜만의 안부인사.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어. 너는 잘 지내니?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했어. 이런 인사들을 기다렸다. 나는.
이전에야 그런게 충분히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편지를 쓰려면 상대방의 주소를 알아야 하는데 주소를 아는 게 쉽지도 않고. 이제 이메일이나 카톡이라는 수단 때문에 주소를 몰라도 충분히 안부는 전할수가 있으니까. 그걸 알고 있는데도 난 왜 계속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는 걸까. 설레임이 필요해서인 것 같다. 관공서 편지와는 딱 봐도 구분되는 투박한 봉투나 엽서. 그 위에 손글씨로 쓰인 주소. 그걸 보며 나는 누가 보낸걸까 궁금해 해서 살펴 보고. 잊혀질 뻔한 옛친구의 안부인사를 보며 잠시 일상을 벗어나 보는 그런 경험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빈 편지함을 살펴보고 계단에 올랐던 것이다.
아무래도 설레임이 싹트기 어려운 빠르고, 예측가능한 그런 세상이니까.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세상이니까. 오배송된 택배는 내 것이 아니었지만, 내가 항상 가지고 있는 갈망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 택배는 제대로 배송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