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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달 Oct 05. 2022

머리만 말리때면 생각나는 그녀

나에게 수학여행이란

중고등학교  제일 설레면서 긴장되는 날은 수학여행 전날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처음 입학한 해의 수학여행 만큼 설레고 긴장되는  없을거다. 아직 서로 데면데면하고, 서로를 알면서 알지 못하는 그런 애매한 상태에서 떠나는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소심한 나는 전날밤 침대에 누워 소망했다. 나랑 그래도 친한 친구가 버스에서  옆에 앉아줬으면 겠다는 소망을. 그래도 익숙한 친구들이랑 방을 같이 쓰고 싶다는 소망을. 혹여나 그러지 못하면 어떡하지? 신나는 수학여행에서 나만 소외되고 외로우면 어떡하지?라는 별별 걱정을 하며 잠에 들었었다.


고등학교 1학 년때. 나는 경주도 아니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이제는 15년이나 지난 일로 아득하기만 하지만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는 하루가 있다. 바로 첫날 밤이다. 수학여행을 오는 관광객만 받을 법한 조그만 콘도에서 보내던 첫날 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시절에는 한 반에 35-40명씩은 되었다. 우리는 부쩍부쩍하게 거실과 몇 개의 방으로 이뤄진 객실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각자 방을 차지하고, 나도 그 속에서 정신없이 방 한구석을 차지했다.


수학여행의 특징이라면 빡빡한 스케줄이다. 우리는 또 정신없이 짐을 풀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일단 거추장스러운 교복부터 갈아입어야했다. 모두 수줍게 옷을 갈아있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 한명이 웃으면서 "아 제모안했는데"라며 한탄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내밀하면서도 친밀한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나도" "나는 털안나"라며 서로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여행에 가서 같이 하룻밤을 보내는건 몇 개월 같이 학교를 보내는 것보다도 친구들과 속성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긴장이 서로 풀어지고. 우리는 설레는 첫날 밤을 맞이하게 됐다. 친구J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녀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지도 않은 채 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그 상태에 드라이기를 가져다댔다. 머리카락이 물에 흥건에 전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바닥은 그 친구가 떨어진 물기로 흥건했다. 그걸 지켜보던 친구 K가 누가 머리를 그렇게 말리느냐며, 일단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라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친구J는 원래 머리를 이렇게 말리는 게 아니냐며 의아해했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보며 고개를 지었다. J는 민망해하면서 웃더니 "아니 몰랐어 진짜"라 말했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헤어 드라이기로 말리기 전에 우리 조언대로 열심히 타월드라이를 했다.


아직도.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릴때면 J가 생각난다. 그렇게 머리를 말리는 걸 당연시 여기는 게 나로썬 꽤나 신기했나 보다. 만약 J가 수학여행을 안 갔다면 머리카락을 여전히 그렇게 말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로 나에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란 그런 일로 남아있다. 15년 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습관에 더 나은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일.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기 전에 타월드라이를 하는 건 별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별게 아닌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잔소리를 해주고, 그리고 그 잔소리를 통해서 더 나은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일.


사실 J의 모습이 강렬해서 내 경험이 흐릿했을 뿐,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친구들이랑 같이 하룻밤을 보내던 날 나는 얼굴 클렌징을 하고 면봉으로 눈꺼플 사이를 쓸어주면 더 깨끗이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친구 S를 통해서 알게 됐고, K를 통해서는 샤워란 원래 매일매일 해야하는 것일수도 있겠구나를 깨달았다.(그 시절 나는 샤워을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지내는 일이란 나에겐 내가 당연시 여기는 습관들을 돌아보고, 더 나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랑 몸을 부대끼며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점점 드문일이 되어가는 것 같다. 몸을 부대끼며 하룻밤을 보내는 것 이전에,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기회도 점점 사라지고,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기도 한다. 이로써 인간 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긴장감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잃어버리는 건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만 깨달을 수 있는, 더 나아질 수 있는 나의 가능성들 말이다. 드라이기를 하기 전에는 타월드라이를 해야한다는 사실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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