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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Oct 19. 2020

미국과 중국은 지금 전쟁 중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한국의 전략, 그리고 베트남 (1)

코로나 이후의 경제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중 간의 무역 분쟁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지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해 7월, 약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고율(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고관세 대상은 중국이 10대 핵심산업으로 밀고 있는 ‘중국제조 2025’에 해당하는 품목(의료, 바이오, 통신, 반도체 등)으로 명백히 중국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맞대응 했다. 미국산 자동차, 농산물 등 총 545개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전체 수출품의 약 25%에 해당하는 조치였다. 


양국의 긴장감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중국의 맞대응을 시작하자 미국은 다시금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미국의 재보복에 다시 미국산 육류, 화학제품 등에 대한 관세 부과로 재대응했다. 


세계 1~2위 간의 무역 분쟁은 양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대부분의 나라는 양국의 분쟁 상황이 끝나기를 원했고 2018년 12월, 미국과 중국은 지속되었던 무역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약속하고 갈등을 풀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9년 1월부터 약 6개월간 양국의 통상 실무자들은 협상을 벌였다. 2019년 4월 미국의 재무장관인 스티븐 므누신의 발언은 양국의 무역 분쟁이 곧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만들었다.


“미국과 중국이 향후 도출될 무역합의 이행을 점검하기 위한 이행 사무소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였다. 2019년 5월, 양국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미국은 관세 범위와 세율을 확대했고 중국도 다시 응대했다. 양국의 갈등은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미국은 대만을 ‘국가’로 지칭하며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올해 들어서는 또다른 ‘하나의 중국’인 홍콩을 건드렸다. 홍콩의 자치권을 두고 홍콩 시민과 중국 행정당국의 갈등이 심해지고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자 중국이 이를 통제하기 위해 ‘홍콩 보안법’을 도입했다.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에 개입하자 미국은 “중국 공산당이 보안법을 제정해 적용함에 따라 홍콩의 독자적 지위가 약해질 뿐 아니라 민감한 기술이 인민해방군에 흘러 들어갈 위험이 증가했다”면서 “미국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홍콩의 ‘특별 지위’는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홍콩은 그간 중국과 서구 국가 간의 허브 역할을 했다. 중국 기업들은 ‘특별 지위’가 부여된 홍콩에 지사를 세우고 투자를 유치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투자자들도 중국 본토보다 규제가 훨씬 덜 한 홍콩을 통해서 자본을 투여했다.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가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게다가 최근 격화된 무역분쟁에서도 홍콩은 자유로웠다. 중국에 적용된 고율의 관세가 홍콩에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을 결정함에 따라 이런 우회로는 차단되게 되었다.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의 90%는 중국 남부에서 생산되는 제품인데 이 제품들은 이제 더 이상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상황에 놓였다. 피해는 홍콩, 중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홍콩에 사무실을 둔 미국의 글로벌 기업 수는 1300개가 넘는다. 홍콩의 특별 지위 박탈은 이들 미국 기업에게도 곧 위기가 되는 상황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양국은 왜 이렇게 서로 출혈을 감내하면서까지 분쟁을 이어가는 걸까? 속내를 쉽게 털어놓기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제는 간단하다. 중국은 시장을 개방하고 공정무역을 진행하든지, 아니면 우리와 무역을 중단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해마다 수천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 우리가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는 바보같이 행동했다” - 2018년 8월 도널드 트럼프 


“중국은 대규모 시장장벽, 국고보조금의 과중한 지원, 환율조작, 제품 덤핑, 강제 기술이전, 지식재산권(IP) 도용 등을 통해 다른 국가를 약탈해 왔다. 그 결과 미국은 지난 25년 간 제조업 일자리 420만 개를 잃었고 15조 달러 규모의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2019년 9월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중국은 그간 WTO의 보호 아래 미국과의 교역에서 이득만을 취했다. 그로 인해 미국의 교역 적자는 지속되었고 일자리도 감소했다. 중국이 누려왔던 교역 이득은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 지적재산권, 환율조작, 덤핑 등을 통해 얻은 우위였다. 이것은 불공정한 거래이므로 이제 중단해야 한다. “



트럼프가 선택한 방법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의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으로 글로벌 자유무역이 본격화되면서 신흥국은 저렴한 생산비용을 바탕으로 재화를 생산해 선진국에 수출하며 꾸준히 경제적 이득을 얻었고 선진국은 그들의 소비시장으로서 신흥국이 생산한 물건을 사들였다. 


이는 경상수지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선진국의 적자 폭은 크게 늘어갔으며 신흥국의 흑자 폭은 선진국의 적자폭보다도 더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의 대 중국 적자 규모(상품 기준)는 지난 2018년, 4190억달러를 기록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500조 가까이 된다. 




적자 자체가 곧바로 미국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미국은 지난 1975년 이후 한번도 무역 수지에서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이런 장기 적자에도 건재했던 이유는 미국이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제조업이었다.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선진국의 제조 기업들은 생산비가 저렴한 신흥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한국 같은 나라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의 경제가 어느정도 발전하며 개발도상국의 위치를 벗어나자 그 역할은 중국에게로 옮겨졌다. 제일 큰 인력 공급처이자 동시에 소비시장인 중국에 제조기업들은 하나 둘 터를 잡았다. 중국은 머지않아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면서 힘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미국의 상황은 중국과 반대였다. 제조기업이 국내를 떠나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실직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과거 제조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도시들은 점점 더 황폐해져갔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철강 산업의 피츠버그. 그밖에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건, 위스콘신, 일리노이, 인디애나, 아이오와 등이 몰락한 도시, ‘러스트 벨트’에 묶이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는 증폭되었다. 원래 이들 러스트벨트는 민주당이 강세인 곳이었다. 트럼프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이 지역을 중점적으로 공략했다.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중국을 압박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기업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여(리쇼어링 : Reshoring) 일자리를 되찾아주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지역을 ‘텃밭’으로 생각하고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통했다. 그는 러스트벨트에서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미중 무역 분쟁은 갑자기 촉발된 게 아니었다


제조업을 부활시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일할 곳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트럼프 대통령만 한 게 아니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부터 꾸준히 추진해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정교하게 잘 짜여진 국제무역의 틀은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시적인 효과를 느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트럼프는 후보자 시절부터 미국 제조업의 쇠퇴 원인을 중국의 ‘반칙’으로 돌렸다. 중국이 불공정 무역을 자행하고 있으며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며 불법적인 이득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를 위해 중국을 직접 견제하겠다고 말했다. 전임자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은 나이브(Naive)했으며 과격한 방식을 써야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표어로 압축되었다. 트럼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과격한 정책도 아끼지 않을 것을 암시했다. 


러스트벨트의 민심은 트럼프에게로 돌아섰고 트럼프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트럼프는 선거 당시에 외쳤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최대한 불이익을 주었다. ‘세계의 공장’ 지위를 박탈시키고 자국 기업의 공장을 다시 미국에 유치하는 게 트럼프의 꿈이었다. 


중국만 견제한 것도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서 철수해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들에게 법인세 인하나 공장부지 제공 같은 당근을 제시했다. 그 결과 애플, GM, 보잉, 포드, 인텔 같은 회사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했다. 외국 기업들의 유치에도 힘을 썼다. 한국의 현대차나 LG전자,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도 미국에 공장을 지었다. 자국보다 더 높은 인건비용 지출을 감수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흔치 않은 결정이다. 이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일종의 협상 카드였다. 바꿔 말하면, 거대 소비 시장 미국을 대상으로 한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 가까웠다. 



출처 : Reshoring Initiative


미국의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전임 오바마 정부부터 트럼프 정부까지의 리쇼어링 정책은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다. 떠나간 외국 기업들이 돌아오면서 9년간 약 35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하지만 그걸로 미국의 전략을 ‘성공’이라고 평하긴 어려웠다. 먼저 리쇼어링으로 돌아온 기업들이 자리를 잘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오티스 엘리베이터의 사례다. 2011년 오티스 엘리베이터는 멕시코의 생산라인을 축소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새로 제조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미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되지 않아 부진을 겪었다. 


오티스가 리쇼어링에 실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번째로는 이전해온 지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충분한 공급 체인이 구축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주변에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겼고 따라서 생산은 더디어짐과 동시에 물류 비용은 늘어났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새로 공장을 설립함에 따라 오티스는 미국에서 신규 인력을 충원해야 했다. 하지만 기존에 유관 산업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충분히 숙련도가 쌓인 인력을 충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보다 생산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생기자 오티스는 더 높은 임금으로 유인했다. 이는 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높은 임금을 내걸어도 여전히 인력 충원은 어려웠다. 미국 사람들은 ‘일자리가 있으면 이동하는 한국인’과는 달리 한번 터잡은 자리를 쉽게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리쇼어링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제였을지도 모른다. 제조업의 생산 거점 이동은 본사 하나만 옮겨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부품을 공급하는 하도급 업체들이 패키지로 이동해야만 가능했다. 결국 미국의 리쇼어링은 정부의 압박에 타협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활용되거나 아니면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트럼프는 전 정권의 작업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해법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Make America Great Again’으로 포장된 대중국 압박이었다. 자국으로 복귀시킬 유인이 적다면 반대로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업체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다.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무역보복을 시작했던 2018년,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6210억달러를 기록했다. 2년 전보다 약 1000억달러가 늘어난 상황이었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미국의 경기가 너무 좋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높여 중국 수입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실업자가 줄고 소득이 늘어나면서 오른 관세만큼의 가격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여력이 생겼다. 중국의 상황은 반대였다. 경기의 상승 추세가 꺾이고 있는 중국에서는 보복관세가 부과된 미국의 제품을 소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결국 수입은 늘고 수출은 줄어든 결과에 이르렀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대통령 연임이 가능하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는 실적이 필요했다. 더욱 강도높은 조치를 이어갔다. 중국은 이 전쟁을 이어가기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의 양보는 곧 손해의 감수를 의미했다. 양국의 무역 분쟁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다음 편 보기 -

*이 글은 베트남 전문 매거진 Veyond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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