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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Dec 15. 2020

인도는 왜 RCEP에서 빠진 걸까?

한국이 받아 든 손익계산서는?

전 세계 절반이 참여한 RCEP, 협상을 주도한 것은 한국과 아세안


지난 15일,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아세안 국가를 포함한 총 15개국은 ‘세계 최대 메가 FTA’라 불리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에 서명했다. 참가국은 15개에 불과하지만 인구로 치면 전 세계의 절반가량인 47.5%(약 36억 명) GDP는 32.1%(27조 5000억 달러)를 차지한다. 규모만 놓고 봐도 ‘메가 FTA’라는 게 손색이 없다. 

전례 없던 규모인 만큼 합의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ASEAN+6을 모태로 지난 2012년부터 협상을 시작, 최종 서명까지 28번의 회의를 거쳤다.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던 협정이기에 조율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합의과정에서 주요 파트너국 중 하나인 인도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이탈하기도 했다. 


결국 인도는 참여가능성만 열어 둔 채 나머지 15개국만으로 서명했다. 이번 협정을 통해 참여국들은 상품, 서비스, 투자, 지식재산권, 전자상거래 등 총 20개 분야에서 자유무역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협정은 각국의 의회에서 비준과정을 거친 뒤 최종 발효된다. 



미-중 갈등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RCEP


참여국들은 원래 2015년까지 합의안을 도출하고자 하는 로드맵을 그렸다. 그러나 선진국과 신흥국, 개발도상국들이 한 데 모인 상황에서 상이한 입장을 빠르게 정리하기는 힘들었다. 신흥국과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공산품이 물밀듯이 밀려올 것을 걱정했고 반대로 한국과 같은 선진국은 개도국 농산품 개방으로 인해 자국 농업이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


지지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협상은 2018년 들어와 빠르게 물살을 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미-중 무역 분쟁이다. 무역을 두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해묵은 갈등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보호무역’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 선회는 전세계 무역질서에 균열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WTO 탈퇴를 거론하기까지 했다. 전세계가 오랜 합의를 통해 구축했던 ‘자유무역’이라는 질서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전세계 교역 환경은 불확실성에 빠졌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해법이 필요했다. 글로벌 밸류체인이라(GVC)라 불리는 국제분업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세계는 WTO 대신 다른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GVC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다자들이 참석한 협정, 이른바 RVC(Regional Value Chain)의 체결이다. 



RCEP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RCEP은 여타의 다자간 무역 협정, 혹은 FTA보다는 개방정도가 낮은 편이다. 2018년 발효된 또다른 대형 무역협정인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서비스·노동·지식재산권·경쟁·투자정책 등 매우 포괄적인 범위를 다루는 데 반해 RCEP은 주로 공산품 관세감축과 원산지 규정 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무역 협정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서비스 무역 부분의 개방 정도는 낮은 편이다. 


이는 이번 RCEP이 그 내용을 전부 갖추지 못하더라도 속도감 있게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면에 깔려 있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논의과정에서 큰 지분을 차지했던 인도를 일단 제외하고서라도 서명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러나 의미가 축소된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RCEP에 참여하는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 태국과 같은 나라는 분업을 통해 전세계 상품시장에 공산품을 공급하는 주요 참여국이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기계장치를 가지고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등을 만들어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 납품하면 이 나라들이 최종 조립해 전세계에 수출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각 부품을 수입하는데 관세가 들어가기 때문에 제품 단가가 올라가게 되고 또 원산지가 어디인지 파악하는 게 복잡해지면서 수출 과정에서 관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RCEP은 이 원산지기준과 관세에 관한 개방은 꽤나 진전된 협정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RCEP으로 인한 관세감축률은 최소 85%에서 최대 92%(인도 참여 시)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는 왜 서명하지 못했을까?


지난해 11월,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국가들과 중국, 인도, 한국, 일본 등의 나라는 RCEP 협정문 최종 합의를 앞두고 있었다. 16개 나라 모두 합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마지막날 돌연 인도가 협정문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참여국들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변수였다. 


그렇다면 인도는 왜 최종 합의에서 빠졌을까? 여기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유들이 깔려있다. 단순히 몇 가지 조항들과 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해서 참여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인도가 겉으로 내건 이유는 무역 적자다. 인도는 금방이라도 중국을 삼킬 듯 한 떠오르는 신흥국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경제규모는 중국의 1/5에 불과하다. 거기에다가 경제 구조 자체도 중국에 매우 종속적이다. 2019년 한 해에만 567억달러로 전체 무역적자의 약 40%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한다. 실제로 인도는 2019년 협상 당시, 중국 공산품 수입 급증을 늦출 수 있는 세이프가드를 도입하게 해준다면 협정에 참여하겠다고 말했으나 중국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결국 협정에서 빠졌다. 


인도 내부 정치도 발목을 잡았다. 인도의 농산품 경쟁력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낮은 편이며 인도의 농업인구는 전체 산업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RCEP 협정을 맺게 되면 농산품 시장을 대폭 개방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인도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과 호주, 뉴질랜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도의 야당 대표인 라울 간디는 “RCEP 타결로 싼 제품들이 인도에 홍수처럼 밀려와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잃을 것” 이라고 경고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도는 중국에 대한 원초적인 우려가 있다. 지난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 이후로 국경을 맞대게 된 두 나라는 지속적인 국경 분쟁 벌이고 있는데 최근 그 분쟁 또한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또 최근 중국이 ‘일대일로’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확장 정책을 펼치자 인도는 이에 대해서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자신들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인도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도 바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다. 


인도와 같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고 있는 일본도 인도와 같은 이유로 ‘인도 없는 RCEP 타결’을 우려했다. RCEP 국가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일본은 한때 인도의 동참 없이는 협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강수까지 두었다. 


결국 인도와 관련된 이슈를 해소하기 위해 참여국 모두가 노력하겠다는 전제만을 두고 인도를 제외한 채 협상이 체결되었다. 



한국과 베트남이 받아 든 손익계산서는? 


이번 협정에서 한국은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왔다. 


먼저 한국의 전체 교역량 중 RCEP 참여국과의 교역은 무려 절반(49.6%)에 달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여국 중 일부 국가들(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일본 등)과는 여전히 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상태였고 협정을 맺은 나라 중심으로 교역을 하거나 아니면 관세 등의 혜택 없이 교역을 해왔다.


이번 RCEP 타결로 한국의 주요 무역국들과 ‘역내’로 묶이게 되면서 한국의 교역 여건은 한층 더 나아지게 되었다. 한국은 중간재 수출국가이자 동시에 해외 거점에서 최종재를 생산하는 나라다. 이미 여러 RCEP국가들과의 분업을 통해 전세계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RCEP이 전세계로 공산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가치사슬 플랫폼으로 자리잡는다면 기존 주요 협력국인 중국, 베트남, 일본 이외에 또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분업을 꾀할 수 있다. 최종재 생산국인 중국을 거친 간접수출 또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묘한 긴장구도 아래 놓여 있는 동북아시아 3국 간의 협력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전망이다. 먼저 한국은 일본과 FTA를 맺지 않았는데 RCEP 타결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FTA 체결이 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과의 FTA는 체결된 시점이 오래 지나서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이번 타결로 중국과의 FTA 개선효과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RCEP 타결은 한중일 FTA 협상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의 통상 갈등 중인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중일 FTA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 또한 지난 11월, RCEP타결 직후 “한·중·일 간에 역사문제로 안 좋은 시기도 있었지만 10년, 20년 후의 관계를 내다보고 한·중·일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언급하며 한중일 FTA 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번 협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농산물 분야의 개방폭이 적었던 것도 다행스러운 점이다. 쌀, 고추, 마늘, 양파, 사과, 배 등은 양허대상에서 제외됐고, 수입량이 많은 바나나와 파인애플도 협상 대상에서 빠졌다. 양허를 허용한 항목은 한국에서 자라지 않는 열대과일과 일부 치즈 품목 정도다. 손해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외신들은 이번 협상의 승자를 한국으로 꼽을 정도였다. 


다만 몇 가지 우려사항도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도가 RCEP에 참여하고 개방 수준이 높을수록 우리나라에 가장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체결된 상황을 놓고 보자면 RCEP은 CPTTP 대비 낮은 수준의 개방폭으로 합의됐고 또 인도가 불참했다. 한국으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의 경계가 심하단 것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자는 RCEP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 재편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다녔다. 미국과도 중요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베트남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아들었다. 먼저, 베트남의 주력생산품인 농산물 및 가공식품 수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베트남이 삼성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제조품 최종 생산을 맡고 있는 만큼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그리고 의복류의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부 꾸옥 찐(Vu Quoc Chinh) 호치민경제대학 교수는 인사이드 비나를 통해 “이번 협정으로 각국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고 외국인투자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선진국들과의 통신 및 금융시장, 물류 및 전자상거래와 같은 시장이 활성화되는데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 내부에서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응웬 티 투 짱(Nguyen Thi Thu Trang) 베트남상공회의소(VCCI) 수석연구원은 “외국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 투자를 확대하면 국내기업, 특히 토종 전자상거래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하고 동남아 수출업체들과의 경쟁도 격화될 것”이라며 급격한 개방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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