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길게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나 질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얘 세계 일주했잖아(사실이 아니지만)"
"남미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여행하는 동안 돈은 어떻게 해결했어?"
비교적 자주, 길게 여행을 떠난 데다 대부분의 여행들이 스스로의 갈망에서 시작됐으니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판단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종종 여행이 좋은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견문을 넓힐 수 있어서', '머리를 식힐 수 있어서', '현실 도피가 가능해서'같은 답들을 던지기는 했는데 사실 어느 하나도 나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대변하는 것 같지 않아서 찝찝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끈질기게 추궁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굳이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곧 잊게 됐다.
그러다 얼마 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고 싶었고 여기에 더해 오로지 '여행의 이유'에 대한 한 권 분량의 책이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읽게 됐는데 더욱 깊이 들어가 보면 '나의 여행의 이유'에 대한 해묵은 궁금증에서 촉발된 선택이라는 설명도 가능할 것 같다.
작가는 책에서 여행의 이유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나의 눈이 번뜩인 것은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와 '오직 현재'라는 챕터를 읽을 때였다. 두 챕터를 읽을 때에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여행의 이유'를 찾은 듯해 감격스러웠다. 과장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중략)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그렇다. 나는 현재를 살기 위한 도구로 여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는 사람, 물건,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동안 우리는 현재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행 말고도 비슷한 효과를 가진 활동들이 꽤 있다. 가장 먼저 운동을 떠올릴 수 있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아드레날린 분비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오로지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우리는 어제 직장 상사에게 받은 질책이나 내일 해야 할 업무를 떠올리지 않는다. 딱히 움직임이 많지 않은 운동조차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마 현재에 집중하는 잠깐의 시간 때문일 것이다. 빠른 속도의 오토바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스킨스쿠버, 서핑, 패러글라이딩, 특별히 맛있는 식사 등을 하며 스트레스가 풀리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잡념에서 벗어남에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와 같은 활동들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활동들 역시 집에서 쉽게 하긴 어렵다. 특히 늦은 저녁시간에 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100억짜리 로또에 맞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일 여행하고 맛있는 것을 먹기엔 적잖이 피곤할 것이다.
그런데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할 때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처음 시도할 때는 집중하기 좋은 장소가 필요할지 몰라도 조금만 연습을 해보면 알게 된다. 명상을 위해 방음 장치된 장소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버스를 타고 가는 10분 동안에도, 회의에 들어가기 직전 1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가능하다. 명상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누구의 도움도 어떤 도구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월요병이 극한에 달하는 일요일 밤 10시에 하는 명상은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잠자리로 이어진다.
명상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됐지만 그동안 경험한 수많은 취미들을 꺾고 '내 생애 최고의 활동'을 명상으로 꼽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돈과 시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으면서도 기분 전환 효과는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초보 명상러가 감히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하는 방법, 효과 등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