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품으로서의 음식

by 빈빈

레디메이드

이 단어를 접한 것은 미술이론 수업과 책을 통해서였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 나는 변기가 예술품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시간을 가졌었고, 과거의 원시문화에서 현대미술까지 그 계보와 변혁에 새 지평을 열었던 신세계 '레디메이드'였다.


며칠 간 끙끙 앓았던 배달음식에 대해서 오늘은 참지 못했다.

배달음식에 대해서 감정을 소모한 것은 아니지만 단지 탕수육이 너무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정도 다음 달 월급을 지급받기 전에 비상분으로서의 돈을 남겨놓길 원한다.

그래서 내가 전달에 받은 월급의 5분의 2를 항상 아껴놓으려고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선택에 있어서 충돌이 발생한다는 점인데

예를 들어서 탕수육 소짜리 단품을 시킬 것이냐 세트메뉴를 시킬 것이냐 아니면 코트를 사기 위해서 가을 긴팔티나 셔츠는 사지 말 것이냐와 같은 난제를 말이다.


결국 돈을 절약하기 위해 시킨 탕수육과 짬뽕을 맞이한 채 나는 행복의 한입을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말라비틀어진합은 쾌쾌했고 국물과 면은 서로를 외면했으며 탕수육의 고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내가 이 중국음식을 살아오면서 몇 차례 먹었지만 오늘따라 기성품이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이 음식들이 나에게 하나의 사조와 같이 굳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음식 앞에서 내가 탐정이 되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갖가지 상상을 버무렸다.

어제 남은 고기일까 아니면 급하게 해동을 시킨 탓일까/짬뽕의 국물은 조개와 같이 끓여진 것일까.


이 음식의 첫 잔을 들며 나는 감사함을 느끼며 접시들을 설거지할 것은 맹세했었다.

하지만 먹는 사람의 감정과 음식에 대한 정성에 있어서 진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빨리 만들어서 빨리 배달하면 되라는 생각은 이미 거쳐야 한 단계를 지나버린 현대사회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슬퍼졌다.


나는 조용히 접시 위에 흐트러진 탕수육을 바라보았다.

한 입 베어 물은 고기는 힘겹게 뜯겼다 그는 고동색의 피부로 겹겹의 결들이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그 겹겹을 바라보자니 나무껍질이 내 앞에서 나타났다

'나무껍질을 벗기면 수액이 있던데..'

그러자 나무껍질이 말했다.

'수액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뿌리에서 잎으로 흐르는 힙을 다 써버렸거든 이미 너무 빨리 소모해버렸어.'


원재료 그리고 가공되는 음식들. 변혁의 음식들이여 레드메이드여!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