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될대로 될 인생 Nov 19. 2021

지금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나와 행복한 엄마입니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을 봤다.

 

“당신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사업에 성공해서 ㅇㅇ억을 버는 것이죠”

“그럼 그걸 번 후에는요?”

“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럼 지금 생각해보시죠”

“아마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도 하고 와인도 하며 함께 할 듯한데요”

“그럼 그걸 지금 하는데 ㅇㅇ억이 필요한가요?”

“그렇지는 않은데 그래도~~”

“운이 나쁘게 당신이 ㅇㅇ억을 벌기 전에 죽으면 어떡하죠?”

“그러게요”

“제 말은 당신이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글을 읽고 마음속 울림을 감지한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미래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순간에 놓치고 있는 현재는 무엇일까. 시간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지금을 후회한다면 그건 무엇일까.




설 연휴에 집에 콕 박혀 ‘고백 부부’를 정주행 했다. 손호준과 장나라의 사랑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장나라가 과거로 돌아가 사망한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장면이 인상 깊었다. 

“꿈에 한 번도 안 나오더니, 꿈 계 탔네" 

하루 종일 보고 싶던 엄마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나라의 모습이 우리네 마음을 대변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엄마와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졌다.

출처 KBS2 고백부부 방송화면/ 돌아가신 엄마를 원 없이 보는 장나라


몸이 점점 작아지며 잔병치례가 잦아진 엄마를 보며 엄마 없는 세상은 어떨까 짐작해본다. 미래에 엄마를 잃은 나는, 과거의 나에게 무엇을 바랄까?




엄마 동영상 많이 찍어놓기

장나라는 엄마에게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한다. ‘엄마랑 노래방 못 갔던 게 한이 됐나 보다’ 생각했던 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실컷 노래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테이프에 자그마한 글씨로 ‘엄마 목소리’라  적어 고이 간직한다.


내 핸드폰을 열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어있는 동영상이 몇 되는지 확인했다. 916개의 동영상 중 엄마 얼굴이 등장하는 동영상은 단 하나. 여행 가서 친구들과 찍은 영상, 남자 친구의 모습, 노을 지는 하늘 등은 그렇게 찍어댔으면서 정작 엄마의 모습은 하나뿐이라니. 움직이거나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하나뿐이었다.

 

일상 속 엄마의 모습을 찍기로 한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거실에서부터 요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엄마가 만든 소리이다. ‘누가 나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요리를 해줄까’ 소중함의 밀도를 높이니 무시했던 소리마저 소중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거실에 있는 엄마의 뒷모습부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요리하는 엄마! 뭐 만드는 거야~?” 조금은 쑥스러웠던 나는 더 오버하며 다가갔다. 그다음부터 계속 밥 먹는 엄마, 김치 담그는 엄마, 설거지하는 엄마의 뒷모습,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을 핸드폰 속에 남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못생긴 얼굴을 왜 자꾸 찍냐며 카메라를 피하셨지만, 내 렌즈 속 엄마의 모습은 무엇보다 빛이 났다.



엄마를 위해 요리하기

엄마는 마트를 가지 않는다. 다음날 바로 배송 오는 쿠팡을 깔아놔도 안 시킨다. 해오던 것이 편한 엄마는 항상 재래시장에 가서 양손 무겁게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오신다. 마트는 비싸고, 쿠팡은 직접 보지 못해 믿지 못하겠다는 엄마에겐 그 방법이 아직 편한 것 같다. 항상 연초에는 시장에 다녀온 엄마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이것저것 못 샀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오르면 얼마나 올랐겠어’라며 티비를 응시하며 그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넘겼다.

엄마를 위해 요리하기로 다짐한 것은 엄마와 동일한 과정을 고집하고 싶었다. 난 고작 하루지만 엄마는 30년 넘게 변함없이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있는 장바구니를 챙기고 시장으로 나선다.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시장에서 빠르게 살 것만 사고 나오겠단 다짐으로 주위를 스캔한다. 대파가... 8천 원...? 생전 대파 한 단은 처음 사본다. 놀랍게도 이렇게 비싸다니.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2잔에 버금가는 가격이다. 다른 야채와 과일들도 생각보다 비싸 더 놀랐다. 재래시장이 이 가격이라면 마트는 도대체 얼마일까 라는 생각을 드니 엄마가 왜 시장을 고집하는 지도 이해하게 됐다. 산 것도 별로 없는데 5만 원을 썼고, 장바구니를 꽉꽉 채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지름길은 오르막길이었고, 무거운 장바구니가 짜증 나기 시작할 때쯤 엄마는 이곳을 몇 번이나 올랐을까 생각하며 울컥했다.

 


“엄마가 요즘 기력이 없어서 삼계탕 해주려고” 걸려온 남자 친구의 전화에 대답했다. “그냥 사드리는 게... 편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러겠지. 하지만 내가 요리하는 이유는 엄마의 일상을 경험하며 그 고마움의 깊이를 더 많이 뿌리내리고 싶기 때문이다. 삼계탕을 만들기 시작한다. 생닭은 처음 손질해봐서 몇 번이나 블로그와 유튜브를 보고, 오돌토돌 닭껍질이 징그러워 장갑까지 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손질을 끝냈다. 좋다는 약재는 다 때려 넣고 1시간 동안 국물을 우려냈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배에 찹쌀과 마늘을 두둑이 채운 닭을 퐁당 빠뜨려 팔팔 끓였다. 엄마는 딸이 해준 삼계탕의 꽤나 근사한 비주얼을 보고는 놀란 눈치였다. 너무 맛있다며 닭다리를 뜯는 엄마를 보며 사 먹는 삼계탕에서 느낄 수 없는 보람도 차올랐다. 엄마와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평범하게 느껴진다면 가끔 이런 요리로 특별함을 더하는 게 좋겠구나.




언젠가 엄마가 내 곁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할걸' 후회할 내가 분명하다. 지금 이 일이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하지도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이라도 붓듯 계속 채우고 채워도 부족한 게 효도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값지게 보낼 수 있겠지. 한번 더 바라봐주고, 한번 더 안아주고, 한번 더 고맙다 사랑한다 말하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내가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을 많이 저장해 두고 싶다. 엄마 없는 그 나날들을 견뎌낼 수 있는 약처럼. 그립고 보고 싶을 때 눈에 보이는 엄마를 보며 조금 더 생생하게 그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 빚어내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