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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될대로 될 인생 Jan 31. 2016

2.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든 걸 뒤로한 채 저는 떠납니다.

"나 워킹홀리데이 갈 거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텔레비전을 응시하던 엄마의 눈이 내 쪽으로 향한다. 싸늘한 표정과 함께.


"너 아직도 네가 어린 줄 아니? 너 어린 나이 아니야. 다니던 회사나 열심히 다녀. 학자금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결혼 자금도 모아야지. 안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래?"


내 나이 25. 흔히 말하는 반오십. 이제 어디 가서 어리광 부리지도 못하는 나이다. 엄마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나는 몇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 '빚'이 있고, 한 달 빠뜻하게 살 수 있는 월급을 받아가며 좀비처럼 일하고 있다. 결혼하기에는 이른 나이기는 하지만, 일찍이 결혼해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몇몇 있다. 


그렇지만 엄마, 지금 아니면 나 정말 못 갈 것 같아서 그래


정말 한 살이라도 더 늦으면, 지금보다 더 망설이고 고민할까 봐 지금 떠나고 싶다. 아차 하고 늦어지는 순간,  그때는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어 있을까 봐, 더 겁쟁이가 되어 있을까 봐 지금 떠나고 싶다.

 

하고 싶은 건 꼭 하는 내 성격을 아는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쉰다. 우리 딸 정말 용감하구나, 엄마는 늘 응원할게라는 응원의 메시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 또한 그 부분이 두렵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엄마,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거 할래요.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할래요.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요.


회사 2년을 채우고 바로 떠나기로 다짐한다. 남들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서 새벽반 회화학원을 다니고, 회사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주말에는 쉬지도 않고 초기 자본을 모으기 위해 알바를 하기 시작한 후, 그렇게 9 개월이 흘렀다. 



캐나다 출국 하루 전,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

집에 오니 내 방 책상 위가 굉장히 분주했다. 쌍둥이 친언니들이 준비한 선물이 가득했던 것이다. 아직 한없이 애 같은 고집쟁이 동생이 일 년 동안 해외에서 생활한다니 한없이 걱정이 되나 보다. 머리끈부터 물티슈, 편지지, 반짇고리, 손톱깎기, 때밀이, 멀티탭, 각종 양념장들까지. 당장이라도 들고 떠나면 될 정로도 참 섬세하게도 챙겼다. 이럴 땐 정말 가족들밖에 없구나, 정말 가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우리 딸, 뭐 먹고 싶니? 밖에 나가서 외식할까?"


양 손에 가득 장을 보고 와서는 맘에도 없는 말을 하는 우리 엄마.


"외식 말고, 그냥 나 집밥 먹고 싶어요. 

엄마가 해주는 집 밥"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가 주는 밥을  먹고살았는데, 일 년 동안 그걸 못 먹는다 생각하니 텁텁한 고구마를 먹은 삼백 개쯤 먹은 기분이다. 마땅히 먹을 반찬이 없었을 때는, 물에 밥을 말아 김장김치 쭉쭉 찢어 얹어만 먹어도 그렇게 맛있었는데. 양은냄비에 고추장 한스푼, 잘 익은 열무김치, 참기름만 몇 방울 떨어뜨려 밥에 쓱쓱 비벼 먹어도 꿀 맛였는데.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그리울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 가족 다 같이 모여 평소처럼 텔레비전 보면서 밥 한번 먹으면 저는 그게 최고의 만찬이 될 것 같아요. 





출국, Good bye Korea.



2번의 실패와 한 번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합격 레터를 받았었다. 캐나다에서 초기 정착 비용을 벌기 위해 3 잡을 뛰며 피곤에 쩔은 한 주 한주를 보냈고, 아침&주말마다 영어 회화학원에 가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열심히 소리 내어  따라하기도 했다. 프리토킹 스터디에서 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창피해 길바닥에서 엉엉 울어보기도 했고, 애써 멀쩡한 척하는 남자친구의 슬퍼하는 뒷모습을 보곤 이기적인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떠나겠다고 이 두 장의 비행기 표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떠나겠다고...





여태껏 내가 만들어온 인생을 모두 뒤로한 채, 새로운 1년을 살아보고 싶은  것뿐이다. 

지극히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맛보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긴긴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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