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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될대로 될 인생 Aug 12. 2016

5.잡 구하기. 정말 쉽지 않다.

난 특별할 거란 착각은 그대로 접어두기

나는 초기 자금이 많지 않다. 2500불 정도인 것 같다. 하지만 집을 구하면서 디파짓과 첫 달 집값을 내니 천불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또 캐나다 마트 구경이 왜 이렇게 재밌었는지. 나가기만 하면 마트에 들러 신기하게 생겨먹은 과자는 꼭 하나 집어 나오곤 했다. 그러니 통장 잔고가 쥐 갉아먹듯 점점 줄기 시작했다. 

집을 구하면 하루빨리 잡을 구하겠노라 다짐했던 나. 시간 날 때마다 키지지에 들어가 잡을 찾기 시작했다. 모르겠는 단어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나에게 맞는 잡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캐나다를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면 다들 알만한 이름 있는 곳에서 일하던데, 나도 그럴 수 있겠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보며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어보기 시작했다.



Hi, I'm kelly. I'd like to work with you. Can you give me a chance? 

초등학생보다 못한 영어 문장 실력으로 이력서와 함께 메일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적게는 3-4개 많게는 10개까지 이메일로 돌리기 시작한 지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고... 핸드폰은 이상하게만치 조용했다. 혹시 내 번호가 잘못된 걸까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나 평온한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노트북 메모장에 발견한 하나의 메모.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카페에서 개최하는 캐나다 도시 설명회에 갔었을 때 작성했던 메모였다.



저때는 오타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몰랐지. 그냥 설명해준 대로 받아쓰기만 했었는데. 


오타와- 일 구하기 힘드니까 봉사활동 하기


참 내가 쓰고도 이걸 누가 썼어할 정도로 기억이 없었다. 뒤통수를 한대 진하게 맞은 기분. 그렇다 오타와는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고 명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제 와서 지역 이동을 할 수 없잖아? 

만만하게 봤던 일자리 구하기에 큰 벽을 만났지만 결코 뒤돌아서지 않았다. 영어도 못하는 나를 무엇이든 시켜줘도 좋으니 제발 일 좀 하게 해주세요!!


도서관에 가서 영문 이력서를 뽑아 In person으로 지원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처음에 가게 들어가는 게 왜 그렇게 부끄러운지 모른다. 영어도 못하는 동양인 여자애가 갑자기 들어와 말을 더듬으며 너네 일자리 구하니?라고 말하는 게 어떻게 보일까... 그래도 한번 보고 안 볼 애들인데 뭐 어때. 그래 그까짓꺼 그냥 해보는 거야!

프린트한 이력서를 오른쪽에 끼고 다운타운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서 손님의 수를 체크한 뒤 한가해 보이는 가게를 슬며시 들어가 본다. Are you hiring now..?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입을 여니 막상 "아..알.ㅇ....알ㅇ.ㅠ......유...하..하ㅇ...ㅏ...이....어링 ..?" 

개미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더듬이처럼 물으니 듣는 이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첫날은 직접 이력서 돌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력서를 직접 들고 들어가서 구인구직하냐고 물어보는 것. 한국에서도 안 해본 경험이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보였던 가족들의 응원 메세지


생각보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한 달이 넘어가니 하루하루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자책하기 시작한다. 슬슬 이력서를 들고 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두렵지 않아진다. 다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참으로 착하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 이력서를 받아주었다. 그 얼굴로만 보면 당장 인터뷰 기회를 줄 것 같았는데, 여전히 핸드폰은 타들어가는 마음도 모른 채 조용함만 남아있었다. 


이력서를 80개쯤은 돌린 것 같다. 그중에 몇 군데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인터뷰 날짜를 잡은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거야! 다른 건 안 해!'라는 배불러 터진 소리는 더 이상 하지 못한다. 그냥 아무거나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상황에 놓였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그나마 제일 예쁜 옷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지만,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말하는 외국인과 1:1로 인터뷰를 하니 집에서 달달 외워온 질문에도 입이 꽁꽁 얼어붙는 게 현실이었다. I'm sorry. I'm very nervous now.... I'm so sorry. 결국은 연습한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바보 바보 바보 머리만 쥐어박았다.

역시 쉬운 게 하나 없구나. 그래 누가 말도 못 하는 나를 쓰고 싶겠어.


셀프 위로가 필요했던 그 때


생각해보면 그렇다. 말이 통해야 뭘 가르쳐주고, 알아 듣고 트레이닝을 시켜줄 텐데. 기본도 안 되는 나를 누가 쓰고 싶겠냐고. 손님이랑 대화도 못할 텐데.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랑 소통도 안될 텐데. 어떻게 일을 시키겠냐고.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거울 속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어떻게 지내냐고 하루하루 안부를 묻는 가족들의 카톡 메시지를 보니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서. 다시 힘을 내고 이력서를 돌리고, 시간 나면 캐네디언 집주인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자신도 만족할만한 인터뷰를 끝냈다. 대답도 곧 잘하고, 매니저도 토종 캐네디언이 아니라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매니저가 나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한다는 느낌을 정말이지 팍팍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 매니저는 며칠 후 나에게 같이 일을 하자며 문자를 보내왔다.


아싸! 드디어 나도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어!!!!!! 끼야!!!!!


세상을 다 가진 듯 너무나 행복했다. 작은 햄버거 집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방 안에서 문자를 받고 혼자 얼마나 콩콩 뛰어댄지 모른다. 그러던 매니저는 자기가 오늘 쉬는 날이니, 근처 스타벅스에서 스케줄을 짜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미소 만발의 답장을 보내고, 매니저를 만나러 스타벅스로 향했다.


저 멀리 보이는 매니저. 30대 중반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남자 매니저이다. 웃으며 가까이 다가가니 느껴오는 깊은 향수 냄새. 갑자기 뭔지 모를 싸-한 느낌이 들었다. 스타벅스에서 만나자더니 스타벅스 앞에 나와있는 매니저. 날씨도 좋으니 좀 걷자고 한다. 이 동네 잘 모를 테니 자기가 소개 좀 시켜주겠다고. 밥은 먹었냐며 밥을 먹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그래 일단 길거리에 사람들 많으니까, 별 일 있겠어. 따라가 보자 생각한 나. 그만큼 일자리 구하는데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통장 잔고가 바닥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착각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10분을 걸었을까. 갑자기 가게에 필요한 재료를 사야 한다며 큰 마트로 들어가는 매니저. 


'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야...' 점점 불안함과 의심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스낵, 샐러드, 터키, 요거트 등등 자기가 먹을 것들을 집어 드는 매니저. 그러더니 나에게 묻는다.


-" 너 이거 좋아하니? 네가 좋아하는 것도 하나 골라봐"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나 그거 안 좋아해. 그리고 난 배 안고파" 


혹시 몰라 오타와에서 알게 된 언니에게 문자를 보낸다.  매니저 전화번호를 보내고.


'혹시나 내가 연락이 안 되면 이놈이랑 같이 있는 거니까 여기로 연락해줘요. 나 지금 뭔가 매우 불안해'

혹시나 증거사진이 필요할까 몰래 찍어둔 매니저의 뒷모습.


이것저것 나하 곤 전혀 상관없는 음식을 집어 든 매니저와 계산을 끝내고 마트에서 나왔다. 장본 게 너무 무거워 자기 집에 좀 두고 나와서 스케줄을 짜자는 매니저. 정말 이건 90% 내 느낌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바보 같은 나는 왜 집 앞까지 따라갔는지 모른다. 10%의 희망을 가졌나 보다. 


그만큼 나 정말 일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매니저의 집 앞에 도착했다. 혹시나가 역시나.


"내가 요리해줄 테니 집에서 밥 먹고 내 방에서 스케줄 짜자. 날씨도 추워지는데"


한창을 착한 척하던 내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이 정색으로 바뀌었다. 진짜 일이 그냥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걸 이용해 먹은 이 새끼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도대체 일한번 시켜주기가 그렇게 힘든 건가? 일하기가 이렇게 힘들 수 있는 거야?


"미안한데, 너네 나라에서는 이게 이상한 게 아닐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무척 이상한 거야. 그거 아니?'

"여긴 캐나다야. 이거 이상한 거 아니야."

"나 들어가기 싫어. 너 혼자 먹어. 난 갈게"


너무 어이가 없네. 진짜 캐네디언도 아니면서 캐나다는 이런거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리 영어로 욕하는 법을 좀 배워둘걸 너무나 후회되었다. 한마디 멋지게 날려주고 싶었는데, 영어를 못하니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 따지지도 못하는구나.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바보 같았다. 내 자신이 너무 가여웠다. 이건 엄마, 언니에게 말도 못 하고 이 서러움을 누구에게 전하리. 뭘 기대하고 거기까지 따라간 건지 진짜. 바보. 멍청이. 난 정말 그냥 일이 하고 싶었던것 뿐인데...


서러워 말할 곳 하나 없는 나에게 집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는 룸메가 눈에 보였다. 내 오늘 상황을 더듬더듬 거리면서 문법, 시제 다 틀려가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룸메는 나에게


"캐나다에서도 그건 이상한 일이야. 그 사람이 잘못된 거야. 앞으로 매장 아닌데서 만나자 하면 절대 나가지마. 알겠니? 그리고 그 사람 번호 좀 줘봐. 내가 한마디 해줄게"


나보다 2살 많은 내 룸메이트. 나보다 더 열받아하며 날 위로해주니 한국에 있는 언니가 생각났다. 그래도 날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캐나다에 존재하니 조금은 서글펐던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 나쁜 일 안 당한 게 어디야. 이것도 경험이지. 다음부터는 절대 바보같이 당하지 말자. 더 강해지자.

상처가 아물면 더 단단하고 강해질거야. 그래도 이건 너무 너무하잖아!


한숨으로 가득 찬 그날 하루. 불을 끄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어도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해외생활,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나인데 정말 크나큰 착각이었구나. 

나라고 특별할 거 하나 없구나. 현실이구나...참 서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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