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씩스미미 Jun 24. 2024

바람이 분다

전국 장애인부모연대 오체투지

 이소라의 열렬한 팬이었다. 바람이 분다를 들을 때면 언제나 몸에 전율이 일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 부르는 바람이 분다를 언제쯤이면 들어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12월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는 거다. 티켓팅 날짜에 맞춰 냉큼 자리하나를 선점했고, 드디어 공연 당일이 되었다. 


 퇴근하고 공연 보러 갈 생각에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출근했다. “저 오늘 이소라 보러 가요!” 라며 사방팔방 자랑을 하고 다녔다. 들뜬 마음에 일도 잘 안 잡히고 ‘수다나 떨자’ 싶어서 언니에게 카톡을 했다.

 “언니 나 오늘 콘서트 가지롱~”

 “아 오늘이구나! 재밌게 보고와.”

 “언니 지금 뭐 해? 일해? 안 졸려? 나 좀 놀아줘~”

 “오늘은 출근 안 하고 여기 와 있어” 라며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언니는 위아래 한 벌로 흰색 삼베옷을 입은 채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왜 길가에 저러고 서 있는 거지?’ 언니 주변 사람들도 언니와 같은 복장이었다. 경찰도 보였다. ‘대체 저게 뭐야… 뭐지…?’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뒤이어 사진 한 장이 또 도착했다.


출처 : 에이블 뉴스(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671)


 흰색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엎드려 있었다. 얼굴과 이마가 차가운 도로 바닥에 닿은 채. 그들의 옆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전국 장애인부모연대 오체투지 : 발달장애인의 자립권, 통합교육권, 노동권 확보」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오체투지는 그저 기사를 통해 봐오던 일들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것도 우리 언니가 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수 많은 부모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우리 언니도.


 순간, 우리 부모님이 생각났다. 

 “혹시 엄마 아빠는 언니 간 거 아셔?”

 “아니… 말 못 했지…….”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언니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도 요즘에 운동한 보람이 있어! 다른 엄마들은 오체투지 하고나서 계단도 못 내려가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냐!” 언니의 덤덤함에 오히려 마음이 더 찢어졌다. 


 퇴근 후 콘서트를 보러 가는 길. 언니에게 전화가 왔지만 차마 받지 못했다. 만원 버스라서 못 받는다고 에먼 핑계를 댔다. 버스 안에서 어렵게 삼킨 눈물은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눈물은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십여년을 기다려 왔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이별노래가 아닌 우리 언니의 이야기로. 예쁜 조카의 이야기로.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라는 걸.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맞서 싸워가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