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의 지역특산화 그리고 전통 가옥의 활용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그 동네, 목포
'목포'하면 딱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구슬프게 흘러오는 트로트 '목포의 눈물'이다.
(그냥 곡조가 구슬프다는 것만 알지 사실 노래는 모름)
https://www.youtube.com/watch?v=FT_FsjZvkDQ&feature=youtu.be
코로나로 2020년 상반기는 나답지 않게(?) 그야말로 옴짝달싹 않고 집 주변에서만 알짱댔었다.
그 울분(?)이 7월이 되어서야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어디든 가야했다. 내 안의 역마살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첫 연차를 냈다. 기왕이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부산은 식상했고 제주도는 간다면 여친이랑 가고 싶었지만 당장 없었다...ㅠ 울릉도/독도도 알아봤으나 티켓이 없었다...
그래서 말만 들었지 밟아본 적은 없는 땅끝마을 '해남'으로 정했다.
출발시간이 퇴근 후이다 보니 저녁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바로 '땅끝'까지 달리기는 후달려서 목포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하고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올해 첫 여행다운 여행이니만큼 기대가 남달랐었는데 마침 날씨도 끝내주게 좋았다. 같이 가기로 한 전 직장동료가 차로 픽업하러 왔었는데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것만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국내여행을 하게 되면 무릇 휴게소에 들르게 되는데, 그 때마다 꼭 찾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우동'인데, 여기에 고추가루 살짝 뿌리고 단무지랑 먹는 우동만큼 맛있는 게 없다.
사실 우동은 일본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렸을 적부터 먹어와서 입에 익은 맛은 바로 이 휴게소 우동이라, 나는 아직도 이게 제일 맛있는 걸 보면 입맛이 정말 싼마이...
옛날우동이라고 해서 우동국물에 면만 말아줘서 그런지 3000원으로 매우 쌌지만 건더기라 할만한 것도 딱히 없는 데다가 좀 더 든든히 먹어야 할 것 같아, 이 휴게소만의 독특한 메뉴를 찾아 보다가 문득 '안성국밥'이라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안성이 국밥으로 유명했었나?
국밥이야 전국 어딜 가나 다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당시엔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만 이 국밥이란 것도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고 우려내는 방식도 달라 맛이 제각각이다.
안성국밥은 찾아보니
안성국밥은 1930년대 전국 5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경기도 안성장터 우시장 국밥집에서 시작하였다. 안성 장터국밥, 안성 소머리국밥, 안성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뿌리는 모두 같다. 우시장이 쇠퇴하면서 국밥집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현재 안성에 남아있는 안성국밥은 여전히 그 맛을 지켜내며 안성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출처)
라고 한다. 안성탕면은 익히 들어봤었는데 우시장이 있다보니 소로 우린 국물로 유명한 동네였나 보다.
그래서 한번 '전국 국밥 지도'로 찾아보니 이런 게 나온다.
지금에서야 왜 안성이 소고기국밥으로 유명한지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었었다.
생각해 보면, 왜 안성이 소고기로 유명했는지 그리고 안성휴게소에서 소고기국밥을 시그니쳐 메뉴로 내세우는지 그 스토리에 대해 설명이 있었다면 좀 더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일본 국도에 위치한 '미치노에키(道の駅)'라는 지역 특산물과 이것으로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휴게소를 참고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휴게소에 따라 지역색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 특산물과 이를 응용한 메뉴를 개발하면, 단순히 화장실 가고 어디에나 있는 메뉴로 끼니를 떼우고 가기 보단 이 지역은 무엇이 그리고 왜 유명한지 그 스토리도 알고 다른 데서는 쉽게 맛보지 못할 이곳만의 음식을 맛보는 기대감에 휴게소에 들러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게소 시설(하드웨어)에 대한 업그레이드도 좋지만 그 안에서 팔고 경험할 수 있는 컨텐츠(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휴게소에서 차별화된 신선한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튼 따뜻한 국밥 한 사발을 비우고 밖에 나와 은은한 석양을 디저트로... (멘트가 참 기름지다...ㅎ)
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달린지 4시간이 좀 못 되어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역 근처에 오래된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11시를 넘긴 야심한 시각이어서일까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줄어든 인파 탓일까 거리가 스산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구도심 쪽은 인적이 많이 뜸해졌다고 하더라...
정부의 휴가지원 프로그램으로 예약한 '춘화당 게스트하우스'란 곳인데 춘화당은 1929년에 한의원으로 지어진 건물을 개조해 게하로 쓰고 있다고 한다. 무려 한 세기 가까이 버틴 건물!
일본에 전통가옥으로 된 료칸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이런 한옥(그것도 오래된 고택)에서 머물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체크인 시간을 한참 지나 도착해서 그런지 마당 대문은 열려 있고 우리가 묵을 본채 문도 열려져 있었다.
본채와 별채가 있고 본채에는 사랑방과 안방이 있는 구조였다.
예전부터 사랑방, 안방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사랑방은 주로 남자가 머물고 대문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며 손님이 올 경우 내주는 방이었다고 한다. 안방은 주로 부부, 어린아이, 아녀자 등이 머물고 집에서 비교적 안전하도록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방이 안방이었는데, 벽에는 목포의 명물인 '유달산'이 수묵화로 그려져 있어 고풍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다만 침구는 이불이 아닌 침대였다.
여름임에도 저녁이 되니 꽤나 쌀쌀했는데 툇마루에는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이 있었고 뒷편엔 화장실이 있었다.
마당은 아담했고 얼핏 둘러보면 마치 60년대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본채 옆에는 별채가 있었는데 다른 가족이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안방 옆에 있는 거실 (게하로치면 로비 같은 곳)인데 지금은 문으로 구분이 되었지만 예전엔 이곳이 대청마루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높은 천장에 하얀 외벽이 공간을 더 깨끗하면서도 넓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건물 자체에서는 역사의 깊이가 느껴졌지만 동시에 인테리어는 다소 아쉬웠다.
고요한 밤. 홀로 건물 이곳저곳을 거닐며 사진에 담아 보았다.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시가 건물 뒤로 우뚝 솟은 빌딩 두 채로 깨지고 만다.
원래는 근처 횟집이라도 가서 여행 첫날의 회포를 풀어볼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이제는 게르만 민족이 되어버린 그곳이 목포에서도 통하길래 아쉬운대로 회를 시켰다. 앱에서는 소주가 없었는데 특별히 부탁하니 편의점에서 사다주셨다!
쓰디쓴 소주를 기울이며 한옥에서의 첫날 밤을 마무리한다.
한 잔 하고 밤 늦게서야 잠이 들었는데 여행 첫 아침이어서 그런지 일행과 나 모두 꽤나 이른(?) 8시에 눈이 떴다. 어제 어두웠던 집을 다시 한번 스캐닝했다. 한옥의 특성대로 빛이 집안 곳곳으로 들어와 실내를 환하게 하였다.
여행 출발 직전 날 밤에 부랴부랴 예약한 곳 치고는 위치나 건물의 독특함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모름지기 나는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을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 글을 적는 시점에는 춘화당 게스트하우스는 폐업하여 더 이상하지 않는 모양인지 카카오맵에서 사라져 버렸다 ㅠ
재료는 갖춰졌으니 이제 요리만 잘 하면 된다
부디 가옥의 원형을 잘 살려서 더 멋진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ㅠ
그렇게 목포 투어의 첫 발을 내딛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