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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Jan 09. 2018

문안 인사

에세이를 쓰고 사람들과 공유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동화를 쓴다고, 조용한 시간에 집중해서 글을 쓰겠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던 무렵이었다. 글과 사투하는 시간보다 졸음과 사투하는 시간이 더 길던 무렵이었다. 이렇게 쓰면 재미있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알 수 없어 늘 두려웠던 내가 나를 믿지 못해 늘 불안했던 그 무렵이었다.

그날도 책상에 앉아 수많은 무언가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달칵, 거실 불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5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아빠가 일어나셨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해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왔다 갔다 하는 소리도, 소파에 앉는 소리도, 텔레비전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아빠가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거실 바닥에서 때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바닥을 문지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빠.”

아빠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가슴 아파요?”

심근경색으로 네 번째 스탠트 시술을 받은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무렵이기도 했다. 아빠가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그래요? 나쁜 꿈 꿨어요?”

“아니.”

아빠의 눈에, 아빠의 몸짓에, 아빠의 목소리에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가득 묻어 있었다.

“우리 커피나 한 잔 마실까?”

나는 일어나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두 잔 타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앞에 두고 아빠가 입을 열었다.

“나 오빠 꿈 꿨다.”

“그래요? 어떻게 나왔는데?”

“너는 오빠 꿈 자주 꾸냐?”

아빠는 내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뭐, 가끔?”

“나는 그동안 자주 꿨다. 근데 엄마는 오빠 말만 꺼내면 우니까 엄마한테는 말을 못 했어.”

아빠는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오늘은 오빠가 어떻게 나왔는데요?”

아빠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전에는 오빠 꿈을 꾸면 오빠 얼굴이 항상 어둡고, 나한테 화를 냈는데 오늘은 자기가 뭘 했다고 막 자랑하면서 까불고 그러더라.”

“뭘 자랑했는데요?”

“몰라. 그건 기억이 안 나. 하여튼 자기가 뭘 만들었다고 웃으면서 자랑을 하더라고.”

아빠는 계속 거실 바닥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바닥이 꿈을 비춰 보이는 스크린이라도 되는 양. 거기에 오빠의 얼굴이 떠오르기라도 하는 양. 아빠의 입술 끝에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 나는 아빠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네. 좋은 꿈 꿨네. 오빠가 웃었다니까 좋네.”

나는 부러 손에 힘을 주고 아빠의 등을 탕탕탕 두드렸다. 아빠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나란히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안방에서 엄마가 코를 고는 소리가 고르릉고르릉 작게 들려왔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으리라. 나는 ‘그런 이유로 글을 씁니다’가 아니라 ‘무턱대고 글을 쓰다 보니 이유가 생겼습니다’는 쪽이다. 체계적으로 이러이러하니까 이렇게 해야지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닌, ‘이렇게 이렇게 해보면 될 것 같아’ 홀로 막 이쪽 땅굴을 파다가 아닌 것 같으면 돌아 나오는, 새 땅굴을 파다가 ‘전에 팠던 땅굴이 맞았나?’ 우왕좌왕하는, 이쪽저쪽 파보다 우연히 이유를 캐내고는 처음부터 그걸 노렸던 양 행동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 조금 더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다. 물론 이유는 변할 수 있다.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었던 이유가 생겨나기도 한다. 몇십 년 후에도 같은 이유로 글을 쓰고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몇 년간은 그 이유로 글을 썼다.

정말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근처에서 열린 영화제에 참석하러 온 그 친구와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한 감독님의 이야기를 꺼냈다. 죽은 아내에 관한 영화를 만든 감독님은 아내의 죽음을 파는 것 같은 느낌에 영화를 만드는 내내 만들고 난 후에도 괴로워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내 몸 어딘가에 박혀 있다가 때때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나도 오빠의 죽음을 팔고 있는 걸까? 아니라고 단호히 부정할 수 없어서 괴로웠다. 오빠 이야기를 하며 내가 얻고 있는 것들, 얻을 것들이 떠올라 죄책감이 깊어졌다.

그러다 아빠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화만 내던 오빠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고 했다. 그럼 됐다 싶었다. 오빠의 죽음을 파는 게 여전히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서 아빠가 오빠와 화해할 수 있다면, 아빠가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아빠 마음의 평화를 살 수 있다면 그건 그걸로 괜찮은 것 아닌가, 오빠도 웃어주지 않을까 잘했다고 칭찬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SNS에 올라오는 내 글을 보고 아빠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엄마는 “잘 봤어”, “보고 울었어” 한마디씩 소감을 남겼지만 아빠는 가끔씩 좋아요만 누를 뿐 그마저도 흔적이 안 보이면 글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내 글이 아빠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글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비교적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나도. 울면서 쓴 글들이었다. 가슴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이야기를, 두려워서 쳐다보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런 게 내 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이야기를 꺼내놓은 글들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모래알처럼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미움, 원망, 분노, 연민 같은 마음을 정화시켜주었다. 흙탕물 같던 마음을 글 위에 들이부었더니 하나둘 쌓인 글자 사이사이를 지나 깨끗해진 마음이 흘러내렸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이, 치유의 손길이 나에게도 미친 것이다.

부디 나에게 닿은 이 손길이 아빠에게도 이르렀기를. 아빠 마음속에 부유하던 검은 알갱이들이 우리가 공유하는 이야기를 통해 걸러졌기를. 마음속에 사랑과 평화만이 남기를. 고르릉고르릉 잠든 엄마에게도 그러하기를. 두 분의 꿈이, 잠이 편안하기를. 우선은 여기까지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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