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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Apr 12. 2023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 일

11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쌀쌀한 길 위에 긴 줄이 늘어섰고 나는 친구와 함께 그 줄 뒷부분쯤 어딘가에 서서 거대한 뱀 같은 이 줄이 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간간이 찬바람이 불어와 굳게 팔짱을 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야, 춥다. 빨리 들어갔으면 좋겠다. 진짜 기대된다. 그 사람 노래 라이브로 들어보고 싶었어.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에게 말한 대로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했으나 초겨울로 접어들려는 11월의 찬바람이 생각보다 꽤 매서워 한번 낀 팔짱을 쉬 풀지 못하고 자꾸만 움츠러 들었다. 어제 밤새워 가방을 만들었다는 친구 역시 이미 콘서트를 세 시간 정도 즐긴 표정, 즉 즐거움은 휘발되고 육체의 피로만 남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아하는 록밴드 콘서트가 아니라 잘 모르는 클래식 연주회를 기다리듯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우리 사이로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우리 바로 앞에 줄을 선 여자분이 또 바로 자신 앞에 줄을 선 여성 두 분과 대화하는 소리였다. 부산에 산다는 그분은 이 밴드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홀로 여기 고양시까지 올라왔다,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오늘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집으로 내려갈 것이며, 이전에 열린 원주와 인천 콘서트에도 갔었고, 천안과 울산에서 열릴 남은 콘서트도 모두 갈 계획이다, 같은 말들을 솔 혹은 라 혹은 시 사이를 오가며 신나게,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와, 콘서트가 열리는 모든 지역을 홀로 다 다녔다니 정말 열정이 대단하다. 와, 오늘 처음 만난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과 저렇게 신나게 대화할 수 있다니 굉장한걸. 나도 이 밴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얼마 전에 입덕해서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고, 온종일 밴드의 음악을 듣고, 결국 실제로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아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나는 콘서트에 올 엄두도 내지 않았겠지. 원주? 인천? 천안? 아이구, 울산? 나는 못 해, 못 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선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야, 우리도 흥 좀 끌어올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콘서트 보기 전인데 우리 너무 처져 있어. 저 정도는 못 돼도 오늘 재밌게 놀긴 하자. 앞사람의 열정을 보며 반짝 힘을 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늘 부러워하며 살아온 것 같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너무 좋아서 그것에 몰두한 사람들을. 무언가의 덕후가 되어 대화 도중 그 주제가 등장하면 무감하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적당했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지는 사람들을. 툭 치면 자신이 빠져 있는 그것에 대한 정보를 줄줄줄 늘어놓는 사람들을.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따라 원주와 인천과 천안과 울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진 않은 것이 더 많은 사람. 좋아하는 것이 생겨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기보다는 내 앞으로 흘러들어온 정보를 주울 뿐인 사람. 꽃을 좋아하지만 집 앞에 핀 꽃을 보며 예쁘다 할 뿐 새로운 꽃, 내가 모르는 꽃을 보러 다니진 않는 사람. 거의 언제나 귀찮음이 애정을 이기는 사람. 질문을 잘 하지 않고 호기심이 없는 사람. 와, 정말 좋다고 감탄한 영화나 책도 한 번 보고 말면 그뿐 두 번 세 번은 보지 않는 사람….

출판계에 들어와 편집자로 일하면서 책을 정말 아끼고, 사람을 깊게 좋아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눈빛에서 시작한 반짝임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존재 자체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들. 너무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늘 솔 혹은 라 혹은 시 사이를 오가며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일상의 모든 경험을 책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을.

타인의 열정은 늘 나를 반성하게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좋아한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기계적으로 원고를 읽고 교정을 보고 책을 만드는 내가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져도 되는 걸까. 반짝이는 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되는 걸까. 열정적인 저 사람들을 보며 나도 반짝 힘을 내볼 수 있는 걸까. 자주 시도하고 금세 나가떨어졌다. 쉽게 자책하고 항상 자신을 몰아붙였다.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임솔아 작가의 작가 노트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원영은 말했다”라는 구절도. ‘아, 나는 열심히 사는 게 무섭구나, 무서웠던 거구나.’ 깨달았다. 무언가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걸 걸고, 온종일 그것에만 사로잡혀 일상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 그와 관련된 모든 걸 내 소유로 삼고 뜻대로 휘두르고 싶어 하는 욕망과 집착이 무서웠구나. 어떤 욕망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내가 잡아먹히게 될까 봐,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뀔까 봐, 그래서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뭘 그렇게까지 해.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일이든. 반짝 힘을 내볼 수 있을 땐 내고, 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좀 빼고 살아도 되지 않니. 그런 사람이야말로 죽음이 아니라 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아니겠니. 꼴깍 숨이 넘어가기 전에 살아남으려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 아니겠니. 잠수에 능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거지. 참지 말고 힘들면 고개를 내밀어도 돼. 책 속 문장은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본 공연은 즐거웠다. 열정은 별로 없는 우리였지만 스탠딩석에 서서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방방 뛰고 손을 흔들고 고개를 돌려댔다. 와, 그 노래 라이브 소름 돋았어. 한 2시간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금방 끝난 것 같지?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우리의 목소리는 솔 정도로 평소보다 높아져 있었다. 열기와 흥분이 온몸을 감싸 11월의 찬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공연 막바지에 접어들어 밴드 멤버들이 작은 선물이 담긴 플라스틱 공을 관객들에게 던져줬다. 나 역시 공을 받겠다고 손을 쭉 뻗고 대기했다. 여기요, 여기. 손을 흔들었다. 베이스를 치는 멤버가 던진 플라스틱 공이 정확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됐다! 손에 공이 들어온 순간, 딱! 검지손가락에 낀 반지에 맞고 플라스틱 공은 다시 앞으로 튕겨나가 버렸다. 아예 근처로 오지 않았다면 포기했을 그 선물이 손에 들어왔다 튕겨나가니 더더욱 아쉽기 그지없었다.

삶이란 그런 것 아닌가, 싶었다. 열심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들 말하지 않나. 그러니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열정적인 삶. 하지만 열심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게 제일 어려운 사람도 있다. ‘열심’이 두려운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손을 뻗어도 세상이 던져주는 선물에는 한계가 있고, 그걸 손에 쥐는 사람도 극소수다. 눈앞까지 왔지만 반지에 맞고 튕겨나가는 불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니 열심히 살면 모두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 말자. 열심히 사는 게 쉬운 것처럼 말하지도 말자. 타인의 열정을 이용해 그 사람을 착취하려 들지도 말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 일도 세상에는 많다는 걸, 나는 좀 비뚤어진 인간처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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