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냥 Aug 21. 2017

데미안, 혼돈속의 자아

문학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을 처음 접한 것은 독서모임을 막 시작한 2012년 가을, 

문학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의 로망이었던 ‘세계문학 작품’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세계명작들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호밀밭의 파수꾼’ 등의 책들을 서점에서 처음 집어 올렸을 때,

어렸을 적 동경했던 ‘문학소녀’의 반열에 끼게 된 것 같은 희열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해 겨울은 유럽문학 작품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점철되어졌고,

‘데미안’을 읽었다는 사실은..우울한 느낌만 남은 채로 몇 년이 지나 기억 속에 묻혀졌다.



책을 다시 만나는 것도 운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5월 셋째주의 토요 독사모,

내가 존경하는 독사모의 지인이 그 책을 다시 소개했다.

그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나는 단지 나의 진정한 자아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고 싶었을 뿐이다.

왜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도 힘들었던가?'


그리고 두달 여후, 합정 교보문고를 서성이다가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찌릿찌릿한 감동의 순간들을 공유해 본다.


#1

그러나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데미안은 내게 부모님들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극과 경고를 통해, 조롱과 풍자를 통해 나를 보다 적극적인 인간이 되게 하려고 애 썼을 것이었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 다가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크로머라는 반 동급생에게 오랜시간 괴롭힘을 당하다가 ‘데미안’을 통해 그 상태에서 해방되었을 때 했던 싱클레어의 내면.



#2

나는 이 예감의 꿈속에서 아프락사스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희열과 공포, 남성인 동시에 여성인 것의 혼합, 성스러움과 추악한 것의 뒤엉킴, 다감한 천친성을 뚫고 지나가는 깊은 죄악의 예감. 이것이 내 사랑과 꿈의 영상이었고 아프락사스 역시 그러했다.... 그것은 천사인 동시에 악마였고, 남성과 여성이 하나로 된 것이었으며, 인간적인 것과 동물적인 것, 최고의 선이자 극단의 악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운명이었고, 이런 것들을 맛보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것에 대해 깊은 동경심을 품음과 동시에 깊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그것은 언제가 내 머리위에 실제로 존재하며 수시로 나에게 덮쳐 왔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 라는 신 아프락사스. 청소년기에 이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서 내면에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괴로워 하는 과정들을 소용돌이 처럼 표현한 부분_도덕과 선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 내면은 어쩌면 선과 악의 수많은 충돌들로 이루어졌을지도.


#3

"사랑은 구걸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녀는 심각하게 말했다. "또 요구해서도 안 되지요. 사랑은 자신의 내부에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은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게 되는 거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 의해서 끌리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끌어당기면 나는 가겠어요. 나는 선물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나는 당신에게 쟁취 당하고 싶은 거예요."

> 데미안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된 싱클레어에게 에바부인이 한 말. 사랑이 어떤 것인지..가볍게 느껴지는 끌림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확신과 자기자신의 발견, 영혼에 다다를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_나는 왜 그렇게도 고전 문학이 힘들었을까? 


너무나도 책에 몰입을 한 나머지, '주인공 = 나’의 상태로 동일시 하려했던 것 같다.

주인공이 깊은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그것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게 되는 결말로 끝나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나 역시 바닥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우울함에 빠지는 것이었다. ‘파리대왕’ 이라는 책을 읽는 도중에는 내용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잔인해서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에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저녁 무시무시한 악몽을 꿨다.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한 채로 그렇게 몇 년이 지나버렸다.


이런 나의 느낌들을 독서모임에서 공유했더니 독사모의 고수 JY님이 나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나만의 관점으로 책을 보려했던 건 아니냐고. 마치 ‘결말은 해피 엔딩이어야해’ ‘주인공이 너무 부정적이면 안되. 좀 밝아야지’ 하면서 나의 입맛대로만 스토리가 전개되기를 욕심부린 것일 수도 있다고.. 우리 주변의 생물, 무생물들이 제각각 자신만의 색깔을 내며 존재하듯이 작품들 역시 하나의 책으로써 그대로 놓여있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그날 저녁 쉽사리 잠이 들 수 없었다. JY님 말대로 나만의 감상에 지나치게 빠져, 책 마저도 판단하려했던 건 아닌지..’어디 잘 썻나 보자~’ ‘내가 공감할만한 내용이 얼마나 나오나 보자’ 라는 태도로 책을 읽게 되면, 그것은 진정한 책 읽기가 아니다. 수 많은 고뇌와 고민들로 탄생한 그들의 작품들은 한 인생이 다양한 것처럼 여러가지 스펙트럼의 한 부분일 뿐이다. 결코 판단될 수도 없는 것들이기도 하고.



책을 만나는 것도 인생의 타이밍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들었던 문학 읽기가 이제는 감당할 수 있을만해 졌달까. 그렇게도 실망스러웠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지와 사랑’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알을 깨고 나오는 ‘싱클레어’의 섬세한 내면들이 궁금한 분들은 ‘편견’ 없이 데미안의 세계에 잠시 빠져보기를 권한다. 




#문학작품중하나를꼽자면 #그녀의 추천 #출퇴근 길 #지하철안에서읽기 #자아를찾는시간 #복숭아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