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금요광장] 칼럼
제8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일 아침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내가 아직 십 대였던 시절의 어느 선거 날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날은 1987년 직선제로 바뀐 후 첫 번째 대통령선거일이었던 것 같다. 여느 휴일보다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친 부모님은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으시고 근처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다음부터는 선거를 할 수 있게 된다며 내심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정작 몇 년 후 성인이 되어 참여한 첫 선거에서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긴 대기 줄, 번거로운 신분 확인 절차 등으로 인해 실망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록을 찾아보니 그 후 35년간 7번의 대통령선거, 9번의 국회의원선거, 9번의 지방선거가 있었다고 한다. 거의 매년 이루어진 재·보궐 선거를 제외해도 스무 번이 넘는 선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미디어나 ICT 분야에서 세상이 발전해온 속도를 고려하면, 투표소 광경의 변화 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OMR카드를 이용한 광학 스캔방식이나 어디서나 투표를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 투표 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개념의 투표 방법이 제안되고는 있으나, 수시로 제기되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아직도 수동으로 집계하는 종이 투표용지를 채택하고 있다. 2016년 Atlantic Council이 발표한 “Democracy Rebooted The Future of Technology in Elections”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법적으로 허용된 인터넷 투표를 도입한 국가가 에스토니아 등 8개국에 불과하다고 하니, 어쩌면 인류가 영위해온 기술의 혜택에서 투표만이 제외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이제 미래 특파원 김나래 기자로부터 미래의 선거일 풍경에 대해 들어볼 시간이다.
“제 9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일인 오늘, 아침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 이미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전체 유권자의 90% 이상이 투표를 마쳤고, 100% 투표가 마감된 일부 선거구에서는 당선 확정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휴대전화나 노트북, 혹은 인근 주민센터에 마련된 스마트 키오스크 등을 이용하여 지문, 홍채, 음성, 안면인식 등 간단한 생체인증 절차만 거치면 되므로, 주소지, 해외여행, 질병이나 부상 여부 등과 무관하게 어디서나 편하게 투표 참여가 가능합니다. 투표 결과는 국민 투표 플랫폼을 통해 지금 제가 있는 종합상황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있고, 각종 포털과 방송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발표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 도입된 이 플랫폼에는 국내 기업이 개발한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어 위변조나 해킹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각 후보자의 주요 공약은 물론, 과거 이력, 재산 현황, 전과기록, 선거운동 과정 등을 모두 한곳에서 살펴볼 수 있어 호평을 받았고, 전 세계 50여 개국과 수출계약도 맺었다고 합니다.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투표 종합상황센터에서 김미래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