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이랑 유치원 차량을 타는 친구가 있다.
동갑 남자 친구인데 지금까지 1년 이상 본 바로 자폐스펙트럼 같다. 까치발로 휘청휘청 걷고 말은 단어나 지시어 없이 표정으로 싫다 좋다를 이야기한다. 현재 다원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장애인 통합반이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일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아침마다 마주치는 아이랑 엄마 몰래 아이컨텍을 몇 번 했다. 내가 살짝 웃으니 아이도 따라 웃더라.
그 아이는 가방 메는 걸 거부하고, 차량 타는 것도 거부한다. “안 갈래요!” 하는 게 아니라 “으우우우” 하며 가기 싫다는 의사를 표현한다. 그렇다고 울거나 드러눕거나 하진 않고 거부의사만 표현하고 순순히 버스에 올라탔다.
어느 날은 다원이가 가방 메는 걸 보더니 아이가 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처음 보는 아이의 적극적인 표현에 나도 모르게 “친구 맨다고 자기도 맨다네!” 살짝 신나 버렸다. 아주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처음 보인 행동에 나도 모르게 기분 좋아졌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아이 엄마가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자기 아이가 장애를 가졌단 이유로 관심을 가지고 작은 행동에 반응하면 싫을 것 같다. 그래서 그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라서 특별대우해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내가 이렇게 몸이 불편한데 왜? 나를 배려해주지 않아? 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장애아동을 가르치며 이 두 가지 모두 겪었기 때문에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까 중간에서 갈피를 잃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음에도 표면적으로 문제를 드러내지 않던 한 엄마가 “우리 아이가 평범한 아이도 아닌데 어쩜 그럴 수 있어요? 선생님?” 하고 나에게 되물은 적이 있다. 그때 많이 놀랐다. 마치 금기어로 여겨진 말을 진짜 중요할 땐 자신이 직접 드러내며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는데 선생님이 배려가 부족하다고 쏘아붙였다. 그 순간, 지금까지 마음을 다 해서 가르쳤던 시간들이 허무해졌다. 그리고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알았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며 그 엄마의 마음은 나보다 더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