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세 Jul 14. 2021

추억의 극장 (3) - 피카디리 극장

단성사, 서울극장과 더불어 종로 3가 전성기 주역

종로 3가 단성사와 마주한 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극장과 더불어 종로 극장 전성기의 트라이앵글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극장이다. 


피카디리 극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시대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참신한 한국영화들을 상영한 극장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래사냥>, <이장호의 외인구단>, <결혼 이야기>, <투캅스>,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 당대의 큰 화제를 모으고 많은 이슈를 낳은 한국영화들을 전담해서 개봉하였다. 


또한 <탑건>, <람보 3> 등 당시 최고가에 수입된 값비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개봉하여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종로와 충무로 일대의 10대 극장들이 주름잡던 시절의 피카디리 극장의 이미지는 무언가 참신하고 시대를 한 발 앞서가는 '트렌디한 극장'의 이미지였다. 또한 97년 개봉한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에서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피카디리 극장의 영화 광고는 항상 다른 극장의 고리타분한 광고와는 차별화된 톡톡 튀는 광고 그 자체였다. 


1987년 1월 신문에 실린 피카디리 극장의 영화 '탑건'의 광고이다. 바로 옆에 놓인 광고들을 보면 온갖 잡다한 수식어가 난무하여 어지럽기 그지없다. '아널드 선언 살고 싶다. 내 무덤을 예약하지 마라...' 도대체 뭔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탑건'의 광고를 보면 젊은 세대를 겨냥한 영화의 이미지에 걸맞은 청바지를 사용하여 톡톡 튀는 느낌이 들게 한다. 80년대 영화 광고 치고는 정말 센스 있고 지금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유년시절의 필자에게 피카디리 극장의 이미지를 '젊고 센스 있는 극장'으로 확인하게 인식시켜준 광고가 또 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명절의 극장가에 어김없이 찾아오던 단골손님 재키 찬(성룡)이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만들어낸 홍콩 판 '인디애나 죤스'라고 불리던 모험 활극 <용형호제>이다. 


80~90년대 대한민국의 설날, 추석의 극장가에는 어김없이 성룡의 복코가 영화 간판, 포스터에 실려 있었고, 그의 신출귀몰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아크로바틱 액션에 영화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80년대 초, 중반 홍금보, 원표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어 '복성 시리즈'로 극장가를 접수했던 성룡은 '취권', '프로텍터' 이후 모처럼 단독 주연 및 감독을 맡아 스케일이 훨씬 커진 오락물을 내놓았다. 필자는 당시 초등학생인 관계로 아쉽게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네 비디오 가게에 어김없이 놓여 있던 복제 비디오로 '용형호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왜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무려 10번이나 보게 된 영화다. 이쯤 되면 비디오테이프가 닳을만하다. 


'용형호제'가 상영하는 동안 피카디리 극장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신문 지면에 실었던 광고들을 살펴본다. 






1987년 1월 1일 개봉하여, 2월 27일까지 상영되던 약 8주간의 기간 동안 실렸던 주요 광고들이다. 당시 신문지면 광고에 실리던 영화광고의 전반적인 기본 공식을 요약한다면, 영화의 주연배우나 주요한 장면들을 눈에 띄게 크게 부각하고, 영화에 등장하던 대사나, 주요한 장면들을 아주 과장된 표현과 '!' 등을 적극 삽입한 문구로 영화의 주요 특징을 부각한다. 거기다가 매진도 되지 않는 마당에 늘 '매진 상영 중'이란 문구로 이 영화가 잘 되는 영화임을 억지로 부각한다. 


하지만 '용형호제'의 광고는 남달랐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어떤 극장도 쉽게 시도하지 않았던 엽서 이벤트를 통해 영화팬들의 관심을 유도하였다. 당시 영화 외적으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성룡의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부위를 퀴즈로 내어 영화 초대권을 사은품으로 내건 당시 행사는 참신함 그 자체였다. 그저 일방적으로 우리 영화 잘되는 영화이니 보러 오라는 메시지만 툭 내던지는 타 극장들의 광고와는 달리 피카디리 극장은 당시에도 이미 고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차용하여 영화의 재미를 상대적으로 부각한 광고도 참신하기 그지없었다. 이처럼 피카디리 극장은 조악함으로 도배되었던 80년대의 영화 광고 공식보다 한층 진화되고 톡톡 튀는 메시지로 영화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85년 여름 당시 청소년 영화팬들을 극장 앞으로 몰려가게 만들었던 최고의 블록버스터 <람보 2>가 개봉할 당시에도 피카디리 극장은 당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이미지가 삽입된 티셔츠 경품행사를 실시함으로써 극장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심지어는 선착순 100명 안에 들기 위해 극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밤샘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지금으로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티셔츠 경품행사가 오히려 청소년들의 탈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결국 극장은 행사를 중단시키기에 이른다. 역설적으로 젊은 세대 영화팬들의 심리와 기호를 정확하게 꿰고 있던 피카디리 극장의 한 차원 높은 마케팅이 돋보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기에는 피카디리 극장의 단관은 너무나도 버거웠다.


2000년대 초반 들어 피카디리 극장은 급속한 추락을 거듭한다. 그나만 2000년 1월 1일 이창동 감독 설경구 주연의 '박하사탕'을 새해가 시작되는 날 0시에 개봉하는 이벤트를 통해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이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피카디리 극장은 8 개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새로이 거듭나게 된다. 이전의 흔적은 사라지고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현대적 감각의 건물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귀금속 상가로 지정된 1층 건물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점포가 들어서야 할 자리는 여전히 텅 빈자리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그런데 이 극장 건물의 9층에 올라가면 독특한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노인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 변변치 않은 서울 시내에 실버 상영관으로 각광받고 있는 허리우드 극장과 더불어 피카디리 극장 9층에는 콜라텍이 자리하고 있다. 입장료는 2,500원. 걸쭉한 추억의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노인들을 위한 무도회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한 피카디리 극장은 2007년 멀티 상영관 체인인 프리머스 라인에 흡수되어 프리머스 피카디리 극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롯데 시네마를 거쳐 현재는 CGV 체인에 흡수되어' CGV 피카디리 1958'이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이다.


영화관 앞에 충무로 스타들의 손도장이 새겨져 있던 광장과 영화 <접속>에 등장했던 극장 앞 2층 카페는 지금은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종로 극장가 전성기를 주도했고 시대를 앞서가는 한국영화들로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은 피카디리 극장. 단관 상영 시대의 종료는 극장 주도의 영화 상영 시대의 종료로 이어졌고, 피카디리의 톡톡 튀는 마케팅과 광고도 더 이상 신문지면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