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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im Aug 03. 2019

"Home Sweet Home"

미주 운전 일지 #5

 지난 몇 년간 엘에이에서 살면서 남편과 자주 했던 말은, 엘에이가 결국 우리가 나이 들어갈 '집'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운전으로만 다닐 수 있는 거리, 비싼 물가, 숲과 산이 없는 동네, 오래된 아파트,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여름과 같은 이런저런 단점을 이유로 우리는 이 곳을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아 했고, 지금도 사계절이 뚜렷한 어딘가로 이사를 갈 궁리를 하고 있다.

 이건 사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안 좋은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며 살았는데,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한 곳에 대해 항상 크게 기대하고 크게 실망하였던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이 별 거 없는 듯하니, 다음에 살게 될 그 새로운 곳이 나의 인생을 바꿔줄 완벽한 집이 될 것이라는 환상. 현실은 기대와 달리 별 것이 없고, 나의 모습과 삶은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한번, 다음으로 이사 갈 장소에 기대를 거는 아이러니를 범한다.

 내가 살아온 모든 곳들을 정말 나의 집이 아니었던 걸까? ‘나의 집’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길고 긴 엘에이의 여름도 한낮의 더위가 져버린 밤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는 한다. 간신히 더위가 식은 저녁시간, 신호대기 중 차창 틈 사이로 불어 들어온 바람이 왼쪽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갈 때. 잊고 있던 바닷바람이 방 창문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있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을 때. 그 여름 바람의 촉감과 냄새에 내가 지나온 모든 곳들, 그리고 내가 살아온 곳들에서 느꼈던 늦은 저녁 바람이 떠오르고는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 방 창문에서는 성수대교를 볼 수 있었다. 해가 지고 창문을 열면 시원한 한강의 바람과 반짝이는 성수대교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적당히 먼 지척에서 은은하게 들렸다. 여느 한국의 십 대처럼 피로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던 나는 하루빨리 뉴욕으로 가서 멋진 예술가의 삶을 살고 싶은 환상이 있었다. 허드슨 강을 앞에 둔 시끌벅적한 뉴욕에서 야경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그 풍경은 꽤 낭만적이었다. 반짝이는 다리 위를 내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자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는 고등학생의 삶이 끔찍이도 징글징글하여 이 곳을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으며 창문 밖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이 모습은 참으로 예쁘다고 생각했다. 뉴욕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는 이유로 그 풍경을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설령 내가 그 대단한 뉴욕으로 돌아가 산다고 하더라고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이 빨간색 다리의 모습을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때 찍어두었던 성수대교의 낮과 밤 풍경을 아직도 가끔 찾아보고는 한다. 그리고 그때 나의 모습과 친구들, 미워했지만 즐거웠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파일명: 내 방 창문.mp4 (4초)
어느 화창한 날의 성수대교




 오레곤 유진에서 대학을 다니며, 4년 동안 4번 정도 이사를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유진이라는 시골 동네에 대한 불만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체화가 되었을 법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가슴속 깊이 내가 졸업을 하여 이곳을 떠나면...이라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도 꽤 여러 번 세상과 동 떨어진 듯한 이 시골에 대해 투정을 부렸었고, 여기를 지금 당장 벗어나지 않으면 내 미래도 불투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당히 과장된 생각까지 하고는 했었다 (시골이든 도시든 미래는 그냥 원래 불투명하다!).

 그런 와중에 내 아파트(룸메이트가 있었지만)와 온전히 내가 선택한 물건들로 채울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보통의 유학생이 그러듯, 나는 졸업하여 유진을 떠나는 선배들의 가구들을 싼 값에 사서 내 방을 메꾸고는 했었다. 싸게 구입한 가구와 물건들로 내 취향에 최대한 끼워 맞춘 나의 방은 어설펐지만 포근하고 편안했다.

 대학생 때는 새벽 내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시골이었어서 밤 시간에는 쌩쌩 달리는 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학교 앞 레코드샵에서 산 엘피를 듣고, 밤새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는 영화를 다 찾아본다던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가 밝았던 낮에는 내내 잡히지 않던 책을 그제야 집중해서 읽으며 새벽을 보냈다. 세상이 모두 잠들어 주변에는 선선한 바람과 귀뚜라미 소리, 빗소리뿐이 들리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나의 우주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한없이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원하던 '도시의 어른'이 되고 나니, 그때와 같은 새벽 시간을 만들고,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 이제는 쉽지 않아 졌다. 빼도 박도 못하고 낮 8시간 동안은 일을 해야 하는 회사원이니 새벽 시간에는 열심히 잠을 자야 하고, 하루 종일 소란스러운 사람 소리와 교통체증에 시달리다 오는 저녁에는 책, 영화, 음악과 같이 내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활동은 포기하고 그냥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며 늘어져있는 것이 보통이다. 방에 앉아 예전의 취미를 다시 해보고자 하는 날이면, 유진에서의 내 방 같은 포근함을 느낄 수 없어 거실로 나와 시도를 하고는 한다. 그러고는 금방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다. 경찰차의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 앞 길가를 내달리는 밤에는, 유진에서의 조용했던 밤공기와 그 시절, 나의 내면의 일에 집중했던 시간이 그리워진다. 창문 옆 침대에 앉으면 얼굴에 닿았던 그 상쾌한 비 냄새와 밤바람. 나는 당시 유진에서의 그 시시하고 고요했던 시간이 다시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시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유진에서의 첫 번째 아파트. 지금 생각하니, 1층에서 침대를 창문에 붙인 건 좀 위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유진에서의 두 번째 아파트.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침대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두었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림자를 팔아버림으로해서 자신이 살던 곳에 더 이상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하고, 결국 소속을 잃고 영원히 떠돌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그림자란, 성원권일 것이라고 그는 짐작한다. 이는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과 여행자를 구분하는 특성이다. 어딘가가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만들고 치열하게 버티기도 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맘에 안 들면 떠나면 그만인 곳이다. 나는 여행자 같은 마음으로 내가 살아온 곳들을 대한 것은 아닐까? 그냥 잠시 지나치는 숙소, house, 떠나면 그뿐인 공간 정도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곳들에 나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모든 곳들이 ‘나의 집’은 아니었을까? 이런 이유로 행복했고 저런 이유로 불행했다는 것은 그곳들이 모두 나의 삶이 깃든 ‘집(home)’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떠나버리면 그만일 곳에서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추억이 생길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의 집, 나의 홈타운은 어디일까. 미국인들은 한 곳에서 born and raised 되었다는 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서로 묻는 where are you from? 에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었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유년시절에 자란 곳? 내가 이 곳에 살기 직전에 살았던 곳? 나는 이젠 그냥 다 이야기한다.


 회사 동료는 내가 계속 떠나며 산다는 것을 신기해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있는 한 곳에서만 쭉 살아왔고, 그 모든 추억과 익숙함을 절대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항상 몇 년간 살고 나면 집을 싹 비우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 나를 보며, 내게 심각한 commitment issue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다. 불만과 기대에 의해 늘 떠나면서 살았지만, 그 부정적인 출발점과는 달리, 나는 늘 떠남으로 해서 내가 지나온 모든 곳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떠날 생각이다. 대신 이제는 어서 떠나버릴 생각만 하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좀 더 감사해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한다. 바닷가 집에 살지는 않지만, 바다에 자주 갈 수 있는 거리에 산다는 것. 근처에 푸르른 숲은 없지만, 캠핑을 갈 수 있는 대자연으로 맘 먹으면 금방 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좋아하는 식당이 집 주변에 많다는 것. 언제나 화창한 날씨와 야자수 뒤로 노을이 내려앉는 바다. 그 바다를 보며 Pacific Coast Highway를 달릴 때의 기분. 이 모든 것이 나의 평범한 일상을 행복하게 한다. 언젠가 오늘 이 곳을 즐겁게 떠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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