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식의 역설을 넘어서는 방법
인간은 자신에 대해 유독 편향이 심합니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을 시간 순서를 넘어 선택적으로 재구성합니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는 가깝게 느끼면서도, 미래의 기회와 가능성은 막연하게 멀게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일부 사실은 축소하거나 과장하며 왜곡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창업 과정의 고난을 시간이 지나면서 미화하거나, 반대로 과거 실패를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완벽한 사례입니다. 신병이 선임병으로부터 가혹행위를 겪고도, 본인이 선임병이 되고 나서는 "신병 때는 다 그런 거야"라고 합리화합니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잘못된 편집력은 기업가나 전문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립하는 데 심각한 방해요인이 됩니다. 지식 서비스 창업과정에서 전문가일수록 다음과 같은 장벽을 만납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정말 시장성이 있을까?", "다른 기업과 창업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에 직면해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분명히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독특한 경험과 통찰이 담겨 있음에도 자기 자신이 먼저 그 가치를 왜곡해 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더닝-크루거 효과나 가면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분명히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독특한 경험과 통찰이 있음에도 스스로 과소평가합니다.
지난 수년간 제가 멘토링한 초기 창업가들에게서도 이런 편향적 태도가 자주 발견됩니다. 경험이 풍부한 인생 경력자들이 인생 2막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이와 경력 단계와 무관하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시장에서 가치 있는 상품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장벽일까요?
흥미로운 점은, 시장 트렌드나 역사적 사건, 타인의 비즈니스 성과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서는 인지적 편향이 전방위적,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지 오류를 넘어 비즈니스 기회를 놓치게 하는 구조적 장애물로 남습니다. 창업과 비즈니스 성장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외부적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원인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지식의 활용 목적과 수단에 대한 인식의 전환
예전에는 '배워서 남 주는 것'을 꺼리는 문화였다면, 지금은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쓸모 있는 지식'이라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이라면 누군가에게도 분명히 가치 있다"는 생각의 틈을 열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혼자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과 배워서 다른 이에게 전달하려는 과정은 목적이 달라진 만큼 수반되는 행동과 결과도 크게 달라집니다. 남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더 깊이, 더 정확히, 더 핵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식 자체가 주는 가치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됩니다.
이는 제가 비즈니스 컨설팅과 스타트업 멘토링을 통해 직접 경험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학습을 위해서 소요되는 시간이 3시간이라면, 강의 혹은 세미나를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배 이상이 소요됩니다. 지식 공유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기존 지식을 재구성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통찰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식의 상품성 여부는 시장에서 판단
지식 상품화 과정에서 심리적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보유한 무형의 가치(지식, 경험)에 가격표를 붙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가치와 시장에서의 객관적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힙니다.
특히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전문 지식이나 창의적 콘텐츠를 상품화할 때, 이러한 가치 산정의 어려움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내 지식이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가격 결정 문제를 넘어, 사회적 맥락(자신의 전문성, 가치)과 개인적 맥락(정체성) 간의 충돌로 확장됩니다. 맥락 간의 충돌 현상은 개인 정체성을 재정의를 통해서 확장하는 기회가 된다고 봅니다. 비즈니스 컨설턴트에서 지식 창업가로, 또는 전문가에서 지식 크리에이터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해 가는 변곡점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내적 갈등만 있으면서 지식 상품화의 첫 발걸음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지식 전문가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역설적이게도, 전문성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자신의 지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상품화하는 능력은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깊은 전문성이 오히려 시장 진입의 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 검열을 중단하고, 과감히 시장에 자신의 지식을 내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내적 갈등만 있으면서 지식 상품화의 첫 발걸음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지식 전문가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빠른 시장검증, 고객 중심으로 대변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10여 년간을 활동했음에도 저 역시 '지식 전문가의 저주'에 오랫동안 빠져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번 브런치 글 내용 대부분은 독자이기 이전에 저 자신을 향한 강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지식의 진정한 시장 가치는 고객의 피드백과 검증을 통해서만 확인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시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지식 상품 가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시장 검증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끝없는 내적 검열과 자기 회의에 갇히는 것입니다. 이번 브런치를 통해서 첫걸음을 과감하게 내딛게 되길 바랍니다. 아니,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