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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Jul 07. 2020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에 ‘성차별 해소’는 어디 갔나

대전MBC‧MBC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을 조속히 이행하라

이 글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문화방송 및 대전MBC 경영진에게 보낼 공개서한의 초안입니다. 아마 실제로 보낼 공개서한과는 내용이 달라질 것으로 보여, 제가 작성한 초안을 업로드 해둡니다. 공개서한 피드백이 오래 걸리고 있어 초안 작성자로서 아쉬운 부분도 있어서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과 문화방송 및 대전MBC 경영진께.     


지난 17일, 대전MBC의 유지은 아나운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넣은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진정에 대한 결정문이 발표됐습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인 대전MBC는 물론 이들의 대주주인 주식회사 문화방송(이하 MBC), 양측 모두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습니다. 대전MBC는 장기간 지속돼 온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하고, 진정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인권위 진정을 이유로 업무상 불이익을 준 데 대해서도 위로금 500만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MBC는 본사 및 지역 계열사 방송국의 채용 현황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향후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 방송국들과 협의하는 등 성차별 시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인권‧노동‧성인지 감수성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결정입니다. 이 당연한 결정을 받아보는 데 1년여가 걸렸습니다.     


그러나 인권위 발표 이후 나온 보도에 따르면 대전MBC는 인권위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대전MBC 측은 “성차별적 채용 관행 관련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인권위가) 업무 다양성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 아쉽고 동일 업무나 근로자 지위에 있어 다툼의 소지가 존재한다”며 정규직 전환과 위로금 지급에 대해 유감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MBC 본사 또한 “세부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결정된 건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아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전MBC와 문화방송 경영진은 인권위 결정문을 읽어보셨습니까? ‘실력으로 최종 합격자가 정해진 것이지 남성이기 때문에 정규직 채용에서 합격한 것은 아니다’, ‘진정인들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대전MBC의 근로자가 아니다’, ‘정상적인 개편을 단행했을 뿐 인권위 진정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게 아니다’라는 대전MBC의 주장에 대해 인권위가 친절하고 세세하게 반박해놓았습니다.     


인권위는 유지은 아나운서를 포함, 대전MBC에서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정규직 남성 아나운서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전MBC가 ‘정규직 남성 아나운서의 경우 행정 업무 등을 추가로 했다’며 업무의 동일성을 부인했지만 인권위는 ‘아나운서의 핵심 업무인 방송 진행은 동일하게 수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근로자성에 대해서도 대전MBC가 업무 내용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업무 형태와 업무 환경 등을 지정하는 등 업무 수행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인권위는 인정했습니다.     


“채용 차별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대전MBC의 공정한 채용시스템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대전MBC 신원식 대표이사는 이같이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력으로 남성 정규직을 뽑았다’며 이를 “공정한 채용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언론인으로서 ‘무자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채용시장에서 성차별은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만연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공공기관 및 금융권 등에서 실제 채용 성차별 문제가 드러나 기사화된 바 있습니다. 채용 성차별 문제를 감시하고 지적해야할 ‘언론’이 정작 내부의 채용 성차별에 대해선 쉬쉬하고 감춰오면서 정작 실태가 드러나자 ‘우리는 공정했다’고 변명하는 셈입니다.      


정규직의 업무와 프리랜서의 업무가 다르다고 가정해보아도, 성별에 따라 고용 형태가 다른 이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남성은 정규직의 업무에 배치하고, 여성은 프리랜서 업무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성 아나운서를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이 아닌, 쉽게 고용을 해지할 수 있는 계약직, 프리랜서로 채용한 것은, 아나운서라는 직종에서 나타나는 여성노동의 성격이 지속성과 전문성 축적보다는 우선 소비하기 좋은 젊은 여성의 필요성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며, 채용 성차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라고 설명한 인권위 결정문에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 대전MBC에 묻고 싶습니다.     


성별에 따라 고용 형태를 달리 채용했고, 그에 따라 임금은 물론 연차휴가‧복리후생에서 불리하게 대우한 것이 사실입니다. 인권위는 헌법‧국가인권위원회법‧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을 들어 차별행위임을 인정했습니다. 대전MBC가 성차별적 채용 및 고용 환경을 유지하는 사이, 단 한 명의 여성 아나운서도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19년 6월 인권위 진정이 제기된 시점까지 채용한 15명의 계약직 아나운서와 5명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지역 계열사 방송국이 채용 성차별 관행을 이어가는 동안, MBC 본사는 손 놓고 있었습니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MBC에게 묻고 싶습니다. 공영방송이 가진 공적 책무에 ‘성차별 해소’란 가치는 없는 것인가요? 지난 5월 한 학회 웹콜로키움에서 박성제 MBC 사장이 “공영방송의 주요 재원은 수신료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신료 지원 요구 논란이 생기자, 박성제 사장은 지난 19일 한국방송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공영방송의 건전한 재원구조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것뿐이라고 해명하며 “MBC는 공영방송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공영방송이며, 공적 구조를 갖고 공적 의무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종합해보면 MBC는 공영방송이고 공영방송이라면 주요 재원은 수신료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채용 성차별 관행을 묵인하는 방송사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여성을 채용 과정에서부터 차별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노동자를 괴롭히는 방송사라면, 여기에 국민의 수신료를 지원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MBC의 관리감독기구이자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도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주기를 요청합니다.      


대전MBC를 둘러싼 문제는, 채용 단계에서의 성차별 및 성별 임금격차‧성별 승진격차 등 노동 시장에 뿌리 깊은 성차별 관행을 현직에 있는 당사자가 직접 공론화한 한국 최초의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례를 통해 한국 사회와 기업들이 우리 안에 만연한 노동 성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길 바랍니다. 여기에 대전MBC와 MBC 본사가 앞장서 주십시오.      


우리는 대전MBC와 MBC 본사 경영진에 이번 인권위 결정을 조속히 수용하고 이행할 것을 재차 촉구합니다. 방송문화진흥회 또한 MBC의 대주주로서 이들이 공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주십시오. 국민의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옳은 길은 스스로 환골탈태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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