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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Mar 19. 2019

KBS는 아직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저널리즘토크쇼J를 보고

#1.

며칠 째 PD수첩에 갇혀있다. 일터에서 최근의 피디수첩을 정리해보라는 일감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피디수첩에서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부인, 이미란 씨의 죽음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 다뤘는데, 실로 이번 기회에 알아보니 신기하면서도 씁쓸하고 아쉬우면서도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





#2.

이미란 씨는 2016년 9월 2일 한강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방용훈 사장과 그의 큰아들은 이미란 씨의 언니, 그러니까 방용훈 사장에게는 처형이고 큰아들에게는 이모인 이 씨의 집에 무단침입한다. 큰아들은 돌멩이를, 방용훈 사장은 빙벽 도끼를 든 채로. 이에 처형인 이 씨는 이들을 무단침입 혐의로 고소했고, 이듬해 2월엔 친정 집에서 큰딸과 큰아들 모두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두 자녀를(그들의 슬하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고소한 이유는 공동존속감금, 공동존속폭행, 상해 치사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나는 몰랐다.





#3.

내가 몰랐던 이유는 내가 시사에 무지해서이기도 하지만, 워낙 언론에서 공론화가 되지 않았던 탓도 크다. 피디수첩 이후 지금까지 나왔던 전체적인 보도에 대해 살펴보았기로서니, 아주 다들 침묵하고 있었다. 이미란 씨가 발견됐을 때 몇몇 언론에서 지면으로 다루고, 통신사에서 ‘발견’ 정도로만 보도를 냈는데, 그 이후로는 한겨레를 제외하고선 친정 가족들의 고소나 방용훈 부자의 무단침입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다룬 언론사가 없었다. 다들 보고서 모른 척 하는 것이다.





#4.

사실 어느 언론사나 다 마찬가지라 누가 잘했니 누가 못했니 따지기도 무안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 방영된 저널리즘토크쇼J를 보는데 어쩜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나는 조선일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KBS편인 것은 또 아닌데, 내가 조선일보였으면 코웃음쳤을 것이다. ‘너네도 모른 척 해놓고. 이제와서 고해성사하는 척.’ 하지만 고해성사하겠습니다, 까지만 말했지 무슨 잘못을 어떻게 고해하고 성사하는 지는 말 안 했다.





#5.

지난 3월 17일 저널리즘토크쇼J에서는 피디수첩의 서정문 피디를 불러 방용훈 사장 배우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피디수첩 말만 들을 거면 당연히 불렀으면 안 됐다. 피디수첩 방영 이후 침묵을 지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짚어야 하고, 그 이전에, 왜 KBS는 무엇을 했길래 보도를 안 했는지도 짚어야 했다. 언론 보도는 짚었다. 누가 했니 안 했니, 한겨레에 기사가 실리고 경향에 칼럼이 실리고 하는 것은 다 얘기했다. 그리고 나서 나온 질문은 ‘왜 이미란 씨가 발견됐을 당시, KBS는 보도하지 않았나?’였다. 이날 출연한 기자는 어딘가 어정쩡하고 어색한 미소와 표정과 말투로 설명했다.





#6.

당시 KBS도 취재를 했다고 한다. 취재 기자들 2명이 나가서 경찰 멘트도 따고, 상황 조사도 하고, 신발이나 여타 물품들도 확인하고 했단다. 그리고 회사망 내에 취재보고를 올렸는데, 그게 그만 삭제됐단다. 그리고 그 기자도 말했다. 이렇게 보고만 올린 사안이, 팩트가 틀렸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보고가 그냥 삭제되는 게 흔하지는 않다고. 내가 봐도 안 흔하다. 이건 누가봐도 윗선에서 ‘킬’한 사안이다. 만약 KBS가 진심으로 자사 비판을 할 용기가 있었다면, 진심으로 한국 언론의 관행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다면, 말해야 했다. KBS 내부 누가,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서, 언제 이 보고를 킬했는지, 그 기자는 취재해서 그 저널리즘토크쇼J에서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랫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때 취재를 나갔던 기자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기억이 안 난다’, ‘올렸는데 삭제돼 있었다’, ‘내부 사정이 있어 취재를 하지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그 당시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말했다고 한다. 순전히 면피용이다. 순전히 그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데스킹을 취재 기자가 했나? 킬을 취재 기자가 했나? 킬한 사람을 찾아가서 ‘왜 킬 하셨어요?’라고 물어야지 킬 당한 사람을 찾아가서 ‘왜 킬 당했어요?’라고 물으면 어떡하나. 성범죄 저지른 정준영한테 찾아가서 ‘왜 불법 영상물 찍으셨어요?’라고 물어야지 애꿎은 피해자에게 찾아가서 ‘왜 불법 영상물 찍히셨어요?’라고 KBS는 물을 것인가? 말도 안 되는 논리다. 게다가 그 발언을 하는 기자의 찜찜한 표정. 그 자체도 방패용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소신대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고, 윗선에서 이정도로 잘 마무리해서 변명하고 오라고 시켰을 것이다.






#7.

나도 면피용으로 밝히자면, 뭐 일종의 음모론이다. 저널리즘토크쇼J를 보고난 뒤 딱 떠오르길래 막 써본 글이다. 하지만 이미란 씨 죽음 이후와 KBS 정상화 전, (지금 정상화 된 것으로 봐야 하나? 모르겠다) 그 사이에 있었던 허물이 있다면, 스스로 들추어서 공개하고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러라고 만든 프로그램 아닌가? 일개 언론에 불과한 KBS가 다른 언론들을 재판하려고 만든 프로그램은 아니지 않는가?






#8.

결국 KBS는 아직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보도를 못 했는지, 진실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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