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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Mar 14. 2019

당신도 누군가의 정준영이다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도처에 깔린 ‘정준영’

#1.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단과대의 한 학과에서 ‘카톡방’이 문제가 됐다. 그 카톡방은 같은 학번 남자 동기들끼리 (물론 전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모여있는 카톡방이었다. 근데 거기서 ‘품평회’가 일어났다. ‘A 얼굴 어때?’ ‘B 몸매 어떠냐’ ‘C는 자기엔 부담스럽다’ 등의 생각만 해도 빡도는 대화가 오갔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검색하면 그 사건이 나올텐데, 순전히 내 기억에 의존해 썼다. 다시 떠올려보기 싫어서.)



#2.

그 카톡방 내용은 유출됐다. 그 카톡방에 초대돼 있던 한 남학생이 그게 부당하다고 느꼈고 이를 캡쳐해 가장 심하게 품평을 당한 여학생에게 ‘미안하다’며 전달했기 때문이다. 해당 여학생은 이를 SNS에 올리며 공개적으로 그들의 사과를 요구했다. 타 학과지만 같은 단과대라, 우리 학과에서도 그 문제는 화제가 됐다.



#3.

화제가 됐다. 거기까지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사과를 했던가? 누군가가 징계를 받았던가? 그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 문제가 엄청난 이슈였고 ‘그런 사건이 OO학과에 있대’라고 떠들기 바빴기 때문이다. 무지하던 그 시절의 나 또한 그렇게 행동했다.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질 않는 걸 보니, 아무도 징계다운 징계를 안 받았나보다.



#4.

그 카톡방에 있던 친구들 중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진 않았지만 친구들을 웃기려는 가벼운 농담으로 그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내 친구였다. 같은 동아리의 같은 기수 동기였다. 그 친구의 문제는 동아리 내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동아리는 그 친구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고심했다. 얘를 내보내 말아, 징계를 어느 수위로 줘야돼. 그 동아리에는 (내가 굉장히 싫어했던) 가부장적이고 꼰대 마인드를 가진 전형적인 한남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그 친구를 옹호해줬다. 뭘 내보내기까지해. 걔 일은 잘 하잖아. 그 친구는 1개월 정도 동아리를 나오지 못했다. 그뿐이었다.



#5.

그 동아리의 여자 동기 중 하나는, 그 친구를 매우 싫어했다. 여자 동기 친구는 나보다 젠더 감수성이 뛰어났고,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젠더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는 친구였던 것 같다. 지금에야 다를지 몰라도, 그때는 그랬다. 그 남자 동기 친구가 1개월 뒤, 동아리에 돌아올 때, 여자 동기 친구는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반응은 그냥 ‘돌아왔니?’ 정도. 난 집을 잠시 떠났다 돌아온 누군가에게 으레 그러듯, ‘에휴, 다신 그러지 마라. 돌아왔으니 다행이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6.

당시의 나는, 정도만 다를뿐, 누군가에겐 작은 정준영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준영 같은 파렴치한에 비유하냐, 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당신은 안 그런 것 같죠? ‘사적으로 연락 안 한지 오래 됐다’ ‘나는 그 카톡방엔 안 있었다’며 어제의 친구와 손절하는 정준영의 친구들처럼, 이전의 자기 자신과 손절하고 싶은 사람이 분명 있겠지. 하지만 손절하고 모른채 한다고 없었던 일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인정하고, 나쁜 행동이었음을 인지하고, 다음부턴 안 그러겠단 약속을 공공연하게 해두면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작은 정준영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를 방관했고, 피의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도 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제서야 그 사실을 터놓고 있다.



#7.

이전의 글에도 밝힌 적 있듯이, 나는 무척 노력한다. 이전의 작은 정준영이었던 나를 반성하고 현재를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 그렇다면 정준영 그 자체였던, 아주 옛날이라도 그랬던 적이 있는, 아주 심각하게도 여전히 정준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이 불법 몰카 영상을 찍고, 유포하고, 유포해 달라고 하고, 그걸 보고 품평회하고... 그뿐만 아니라 인간을 상품화하고, 대상화하고,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성욕 해소의 도구로만 여겼다면, 아니 그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또는, 그걸 방관한 적이 있다면. 깨닫고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삶은 옳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사회에 해악만 끼치고 범죄 행위이고 타인을 아프게 하고 인간답지 못합니다.



#8.

하지만 이걸 스스로 깨닫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주변에 물어보세요. ‘나 이런 적 있는데, 이거 문제야?’ 이걸 들은 상대방이 여러분을 초미세먼지로 뿌얘진 하늘 쳐다보듯이 쳐다본다면, 당신은 미세먼지처럼 일상에 퍼져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건강에 무척이나 해로워 발암을 일으킬 수 있는 정준영 같은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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