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없었으면 진작에 망했을 나라
#1.
복수전공으로 듣게된 사회학과 수업. 사회 현안에 찰떡같은 비평을 하기로 소문난 교수님이었다. 한 번은 교수님이 '엿같은 윗대가리가 많은데 나라가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세월호 사건 봐요 여러분. 국민 300여 명이, 그중에는 고등학생이 대부분인, 그들이 타고 있는 큰 배가 뒤집어졌는데 대통령 뭐했죠? 그 아래 장관들은요? 더 아래 해경은요? 아니 그 배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회사와 당일 배 운항을 총괄한 선장은요? 정말 이 나라 엉망이지 않습니까?
최순실 발 국정농단을 볼까요? 이 때도 대통령 뭐했죠? 그 아래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들은요? 청와대 수석들은요? 대통령 우군이 되어줬던 새누리당은요? 그 누구도 정직하게 자기 일 못하고, 비리 저지르고, 자기 몫 챙길 거 먼저 생각하고, 그랬잖아요. 진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부터 그 아래 전부가 썩었는데, 이 나라가 안 망한 게 정말 용합니다. 대한민국 대단한 나라에요.
자, 그럼 한국이 왜 안 망했을 거 같아요? 저는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서울 내에서, 그래도 거기 교수다 하면 '아~' 해주는 사립대학교의 '정'교수니까. '우리'에 포함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웃음) 물론 전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현재의 사회는 고~도로 분업화 돼 있어요. 사회는 유기체라는 말 들어봤죠. 각 개인과 집단이 다 하나하나 세포의 역할을 맡고 있는 거예요. 엄청나게 분업화 돼 있으면, 어느 한 쪽이 무너져 내려도 다른 한 쪽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가볍게는, 다들 윙크할 수 있죠? 한 쪽 눈만 감으려면 감을 수 있잖아요. 오른쪽 눈 감는다고 왼쪽 눈도 감아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무거운 예시로는, 불의의 사고나 유전으로 한 쪽 다리나 팔, 눈, 귀 등 우리 신체 일부분이 편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여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살아가는 데 불편함은 있을 수 있을지언정 다른 일반 사람들과 같은 욕구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어디 하나가 망가진다고 해서 전체가 망가지는 게 아니니까요.
고도로 분업화 돼 있으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또 세계 모든 국가가 그렇지는 않아요. 베네수엘라나 시리아를 볼까요? 정치권의 부패나 사회 내부 갈등이 그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어요. 그 사회 내에서 그 문제가 가지는 포션이 너무 커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 사회의 나머지 파트가 가지는 포션이 너무 작거나, 크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결과는 사회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거죠.
한국은 어떤가요? 윗대가리(웃음) 아니지, 상위 1%라고 합시다. 상위 1%가 망가지고 부패하고 썩었더라도,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우리 같은 99%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이 사회를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에서, 평범하게, 원칙을 지켜가면서. 물론 법 같은 걸 어길 때도 가끔 있겠지만(하하)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일반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그게 나머지 다리, 팔, 귀, 눈 등이 못 쓰게 되었더라도 나머지가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는 겁니다."
#2.
근래 한국은 내 생에 가장 엿같은 '다이내믹 코리아'다. 뭐, 전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트이기도 했고, 허구헌 날 앉아서 보는 게 뉴스뿐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진심으로, 요새 돌아가는 코리아를 보며 정신이 혼미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챙겨야 할 이슈는 이미 산더미 같은데, (이미 1%가 저질러 놓은 각종 악행과 범죄와 비리같은 오물들이 차고 넘치는데!) 매일매일 새로운 뉴스가 터진다. 근래 생각나는 것만 간단히 정리해도 벌써 열 손가락이 넘는다. 클럽 버닝썬 마약/탈세/성접대 의혹, 정준영 몰카 범죄, 조재범 코치 성폭행 사건, 신유용 선수 미투, 북미 정상회담 결렬, 나경원 국회연설 헛소리, 5.18 민주화 운동 망언, 국민소득 3만불 시대, 한유총 개원 연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서 나온 탄핵 반대 목소리, 박근혜 사면론, 이명박 보석, 전두환 광주지법 재판, 연동형 비례대표제, 청와대 2기 개각, 택시-카풀 합의, 김용균법 통과, 하청업체 노동자들 사망사고, 여성가족부 가이드라인, 손혜원, 손석희, 미세먼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 Human으로서, 우리가 '인류'의 한 일원으로서 이래도 되나 싶은 일들이 대부분이다. 여성 성 대상화 및 상품화 하기, 북한은 무조건 적대시하고 통일과는 한 발 멀어지기, 민주화 이끈 시민운동에 재뿌리고 기름 붓기, 시민들에게 정치 혐오 만들기, 국가의 미래는 아이들이라고 하면서 정작 아이들 교육보다는 자기 집 재산 걱정하기, 그 와중에 손석희 동승자나 궁금해 하고 정준영 몰카나 보고 싶어하는, 초미세먼지 500톤을 폐에 들이 부어도 모자랄 몇몇 파렴치한 이들의 시민 의식...
#3.
그럼 대체 이 나라의 아틀라스(그리스로마신화에서, 온몸으로 지구를 받치는 그 분)는 누구인가? 우리 교수님은 99%의 평범성이라고 했다. 어느정도 동의한다. 우리가 없었으면 이 나라는 진작에 망했다.
#4.
근데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말야. 이 나라 평범한 시민들도 문제가 많단 말야. 우리가 받치는 지구 자체가 허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