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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Mar 26. 2019

정규직을 위한 일기

#1.

같이 욕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기자가 되겠답시고 신문을 매일 읽은지 1년 좀 넘었을 때였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최저임금은 존재 자체로 뭇매를 맞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최저임금 문제는 조중동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호주서 보고 느낀 최저임금은 아무렴 올라야 좋은 거 였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때쯤, 구글에 'OO 시민단체'라고 검색했다. OOO이 제일 위에 있었다.




#2.

인턴을 채용한다는 소식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오, 여기 사람 뽑는구나. 그러곤 이것 저것 눌러서 들어가봤다. 이 시민단체는 언론 모니터링 보고서를 꾸준히 내는 구나. 오, 그러다 눈에 띈 건 최저임금과 관련해 나랑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보고서가 있다(단순히 존재한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는 거였다. 몇 개 쓱 훑어보니 이 사람들 재밌는 걸 하네, 싶었고 이어서 아까 인턴을 채용한다고 했지? 싶었다. 그리곤 지원해 지금까지 아주 신나게, 즐겁게, 활기차게 다니고 있다.




#3.

언론 운동의 'ㅇ'도 모르면서 '언론 운동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파렴치한이기 때문에, OOO에 출근해서 뉴스를 보고 함께 떠들고 남의 생각을 엿듣고 공감하고 속으론 또 반대하면서 나의 언론관을 쌓아가는 이 과정 자체가 나는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우리(감히 우리라고 해봅니다)가 조잘거리고 떠들면서 동시에 숙고하고 머리 굴린 모든 것이 '모니터 보고서'로 나가거나 '논평'으로 나간다. '팟캐스트'도 만들어져 나가고 요즘은 '1인 시위'도 나간다. 여기 있는 동안 영화 상영회에도 나가고, 좋은 보도 시상식에도 나가고, 연말 모임에도 나갔다. 여기 있으면 무엇인가 고이지 않고 밖으로 표출된다. 이 느낌이 참 좋다.




#4.

즉, 내부에서 본 OOO은 노력하는 단체다.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 저것 하는 게 많다. 모니터링 사업도 진행하고, 시민 대상 강좌나 분과 위원회도 운영하고, 팟캐스트도 만들고, 처장님 또는 팀장님이 방송 이곳 저곳에 출연도 하신다. 그래서 대부분 일당백을 한다. 아니 다들 일당백이십, 일당백오십씩 한다. 적은 인력으로 다양한 일을 꾸미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이 모든 일들이 언론을 바꾸고 시민들의 알 권리를 지키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 같냐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부자로서.




#5.

종편에 꽤 오래 다닌 친한 모 선배 기자에게 'OOO'에 있다고 말했더니, 그는 "OOO 알지"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대충 '거기 우리 싫어하잖아ㅋㅋ' 이런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OOO, 기자들 사이에선 유명해"라고 말했다. 우리 매체가, 한국 사회 언론이 OOO에 의해 감시 당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기자 사회에서 보기에 OOO이 되게 날카로워 보이는 구나, 하고 느꼈다. 그외에 기자가 이미 된 친구들, 또 여전히 기자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OOO에 대해 한 두 마디씩 했다. 대부분 사무처장님 방송 잘 들었다, 좋은 말 감사하다, 이런 얘기다. 언론이 우리가 좀 눈엣가시 같다니, 그 자체로 기분이 좋다.




#6.

OOO의 모니터링 활동을 높이 평가한다. 언론 모니터링 보고서가 있었기 때문에, 나 같은 일개 시민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하고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언론 모니터링 보고서가 있었기 때문에 언론사 기자들이 ‘아, 누군가 우릴 지켜보고 있구나’하고 섬칫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주체와 소비하는 주체 모두에게 효용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모니터링 활동은 되도록 끝까지 전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OOO의 언론 모니터링 사업 시작은 회원들의 무보수 활동에서부터라고 들었다. 시민의 힘을 빌려서라도 꼭 계속 진행했으면 한다.




#7.

모니터 보고서를 쓴 나 자신에게도 효용이 있었다. 초기 YTN을 맡아 모니터링 했을 때, YTN 측에서 피드백을 보내왔다. 대충 내용은 ‘우리가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춰졌다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였다. 피드백은 팀장을 통해 내게 전달이 됐고, 나의 보고서가 가진 영향력에 대해 체감하는 기회가 됐다.

YTN 모니터를 떠나 방송 뉴스 모니터를 시작했을 때, 스포츠 계 성폭행 사건이 터졌다. 꼭 한 마디 하고 싶은 주제들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스포츠 미투 모니터링 보고서를 쓸 기회가 있었다. 보고서가 나간 뒤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다. 내가 개인 SNS 계정에 공유한 탓도 있지만 어쨌든 이를 본 주변 지인들이 연락을 보내왔고, 그외 네이버와 다음의 네티즌들, 팟캐스트와 유튜브의 댓글들을 보니 힘이 났다.




#8.

시민단체 활동이 이렇게 즐거울 지 몰랐던 것은, 시민단체가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며 또 어디서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시민단체로의 사람들의 호응과 참여를 많이 이끌어 내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1)뉴스를 많이 보게 하고(뉴스를 많이 접한 이들의 시민단체 참여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시민단체에서 사람들이 많은 경험을 얻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를 많이 보게 하려면 직접 재밌는 뉴스, 쉽고 재밌게 해설하는 뉴스를 만들거나 언론이 그런 뉴스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의 언론 운동 시민단체는 무엇을 할까? 직접 뉴스를 만들기도 할까?)

최근 뉴스타파에 후원하면서 온라인 교육을 받고 있는데, OOO 또한 그런 플랫폼과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웹과 자바와 C언어를 배워서라도 그런 홈페이지를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부족한 것이 역사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언론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문인데, 흔히 우리는 이 창문은 왜 이 모양인지, 언제부터 달려 있었는지, 깨진 적이나 수리된 적은 없는지 아무 정보도 없이 멍하니 창밖을 보기 때문이다.

추가로, 언론 개혁 운동으로 필요한 것은 언론에 대한 개념 재정립과 언론에 대한 구시대적 정의, 함의, 요구, 규제 등을 바꿔나가는 일이다. 신문 지면이 게이트 키핑의 역할을 하고, 방송의 전파가 공공성과 함께 영향력을 가지던 시대는 다 지나갔다. 이젠 인터넷에서 퍼지는 가짜뉴스와 허위조작정보가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하고, 이들에 대해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그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연구를 돕고 싶다.

그리고 유튜브에 창궐하는 가짜뉴스나 종편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허위조작정보들은 만드는 이들과 이를 소비하는 이들이 충분히 넘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사회 분열과 극화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 화합과 치유에 대해서도 언론적 관점에서 고민하는 일을, 우리 시민단체에서 선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OOO 7대 활동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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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OOO의 활동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OOO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기술해 주십시오.'

'OOO의 활동가가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기를 설명해주십시오. OOO 활동가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본인의 자질이나 경험, 능력 등을 피력해주십시오.'

'OOO의 활동가가 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면 적어주십시오.'

라는 문항에 대한 필경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copyright=>나! 무단 전제와 복사 및 게재를 금합니다. 생각을 갈취하고 싶다면 그런 생각은 썩 집어치우시고, 아이디어를 좀 빌리고 싶다면 저와 무엇으로든 토론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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