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물 모여 큰 물 되고... 큰 물이 땅에 흔적 남긴다.
2024년 3월 10일까지 서울 덕수궁 옆 시립미술관에서 사진가 구본창 개인전이 열린다. 사진가로서 궤적을 돌아본 회고전이면서, 사진가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영향 준 자료들을 정리한 박물(博物) 전시에 가깝다. 개인 수집품, 잡지 등을 비롯해 여러 잡다한 물품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다. 당연히 작품 사진만 전시된 것이 아니니 살짝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소품들 덕에 인간 그리고 사진가 구본창이 보였고, 그가 추구한 사진의 길을 조망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혹은 지닌) 물건이 얼마나 될까? 나이대별로 변하겠지만 그 수는 엄청날 것이다.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외하고도 취미 혹은 취향에 따른 수집품, 그리고 배움 과정에 필요한 잡다한 사물들... 이런 물품들은 대개 필요한 시간대를 지나면 대부분 폐기되거나 사라진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환경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지니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부모가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 치워버리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구본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사진을 비롯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보존하고 남겼다. 하다못해 일상적으로 쓰는 세숫비누가 닳아 얇게 남은 것도 남겼다. 그리고 이를 사진 찍어 작품으로 변환시켜 놓았다. 이런 꼼꼼함은 섬세함과 맞닿아 있다. 그게 구본창의 사진 미감으로 투사된다.
그리고 연세대 재학 시 ‘화우회’라는 미술 동아리 활동하며 그림을 그렸던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도 그의 그림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 몇 점 보인다.
구본창과 나의 오프라인 첫 만남은 중앙일보 재직 때다. 당시 사진부장이 주도한 '신문 편집과 사진'이란 주제로 연 사내 세미나 강사로 만났다. 강의에서 구본창은 다양한 외국의 잡지와 신문에 사용된 사진을 보여 주면서 편집과정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사진의 '틀' 그러니까 사각으로 고정된 사진의 특성을 가능하면 편집과정에서 부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편집자, 혹은 디자이너라면) 사진을 보는 눈을 키워 사진 속 이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한 예를 보여주었는데 사진 속에서 보이는 알파벳 글자 이미지를 포착해 본문 첫 문장을 시작하면서 큰 폰트로 사진 속 알파벳 글자로 시작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면의 통일감 그러면서 눈길이 사진에서 본문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아울러 폰트 자체를 사진 속 이미지와 비슷하게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는 수고를 했다면서, 이 정도 노력을 해야 한 단계 더 높은 지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런 자료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됐다. 사진가의 길을 가면서 마주치는 사물들에 대한 관심과 분석은 잡다한 지식의 총합을 만들고 정제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게 바로 구본창이 만들고자 한 사진 작품이다. 시기별로 변한 그의 작품들이 서소문 시립미술관 1층과 2층 절반을 채웠다. 작품을 보는 동선 사이사이에 그가 관심을 가졌던 사물 그리고 배움 과정에서 준비한 자료들, 그리고 사진 외적으로 표현된 잡지, 포스터, 동영상이 놓여 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4층으로 된 구본창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각 층의 공간마다 다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1층 스튜디오부터 시작해 작품 보관, 그리고 이번 시립미술관 전시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가 모아둔 서적, 물품 등 각종 자료가 방뿐만 아니라 계단에도 놓여 있다. 이런 공간이 있기에 그 많은 자료가 모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진가로의 성공이 이런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었을 것이고... 어찌 보면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대우실업 회사원이 된 경력이 살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그 생활이 너무 싫어 사직 후 독일로 사진공부를 위해 갔지만, 경영학을 배운 회사원의 숫자 감각은 절대 무시 못한다.)
3월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무료다. 비용 걱정 없이 시간 날 때마다 들려 꼼꼼하게 볼 수 있다. 서소문 근처 직장인이라면 매일 점심시간에 들려 전시회를 차분하게 관람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구본창이 만들어(그가 '연출사진:Making Photo'라는 말이 생기게 만들었다.) 온 사진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진의 길을 가려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한 사진을 선보인 구본창을 보면서, 먼저 그 길을 간 사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으로 전 세계 사람과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외부요인이 큰 부담일 것이다. 아직 외부에 닫힌 시간대에 있던 공간에 선진문화를 배워와 펼치는 것은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 시대... 힘들다고? 글쎄? 우리에겐 BTS가 있지 않나? BTS처럼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전시장을 찾아 사진 보면서 생각해 볼 지점이다.
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ntents/view.do?idx=12597
http://www.monthlyphoto.com/art/art/artView.do?artId=145
https://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137
https://happy.designhouse.co.kr/about/cover_view/3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