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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두 Jan 17. 2021

그는 정말 성범죄자였을까



평일 오후 시간, 하철 역무원인 나는 안내부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환승인원이 많은 걸로 손에 꼽는 역이라 주중 낮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붐비고 있었. 출구를 찾는 사람, 화장실 위치 물어보는 사람, 카드 찍었는데 못 나가고 있다는 사람 부스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사연다양했다. 그분들은 처음이겠지만 나는 이미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고 대답해주었다. 사람만 달라지며 반복되는 뻔한 레퍼토리. 지겹지만 평화로웠던 시간을 깬 것은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다급하게 부스 유리창드렸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성추행 당했어요."

"네?"

"저 성추행 당했다구요!"



역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어쩌면 가장 난감한 일이 바로 성추행이다. 그깟 성추행범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이다. 역무원은 경찰관과 달리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와 마주쳤을 때 할 수 있동은 일반시민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찰관이 출동할 때까지 의심되는 사람을 잘 구슬려서 붙들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성추행범이 아니라면? 온한 직장 생활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손으로는 112를 누르며 물어본다.



"어디서 어떻게 당하셨어요?"

"저기 저 남자가 지하철 내렸을 때 말을 걸더니 그 이후로 계속 쫓아와요."


저 남자가 계속 쫓아와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구의 남성이 있었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이나 되었을까. 그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반면 내 눈동자는 그 사람을 계속 쫓아가며 질문을 이어다.



"뭐라고 말을 걸던가요?"

"시간을 물어보더라구요."

"그 외에 신체적인 접촉이나 위협 같은 것이 있었나요?"

"아니, 계속 쫓아오고 있다구요!!!"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위협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내가 공감을 못한다고 느낀 것 같. 말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 대화가 오고 간 사이 112와 전화 연결이 되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긴급신고 112입니다."

"저는 OO역 역무원인데요. 지금 손님이 성추행을 당하셨다고 하셔서요."

"손님이 어떻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시나요?"

"시간을 물어보고 그 이후로 계속 자기를 쫓아온다는데요."

"네?"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못 들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네. 일단 경찰 출동하겠습니다."



나는 부스 문을 잠그고 남자와 2~3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따라갔다. 그는 환승통로를 걸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나와는 거리가 있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길어봤자 두세 마디 정도의 짧은 대화들이었다.


환승통로를 지나 승강장에 도착한 그는 막 진입하고 있던 열차를 타려고 했다. 찰나의 순간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를 따라 열차를 탈 것이냐, 아니면 그를 막아설 것이냐. 머릿속으로는 아직 고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어느새 그의 팔을 붙들고 있었으니까.






내 키는 평균이지만 덩치는 큰 편이며 성인이 된 후에도 무술도장을 10여 년 넘게 다녔다. 까짓 거 일반 남성 한 명 정도는 어찌어찌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 정도는 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이 났다. 그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으며 덩치는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고, 이미 그의 팔을 잡았는데 뭐 어쩔 거냐.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경찰이 올 때까지 그를 어떻게든 이 역에 머물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손님. 어디까지 가시나요?"

"네? 누구세요?"

"아 저는 여기서 근무하는 역무원이에요."

"그런데 왜요?"

"잠깐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 이 열차 타야 되는데..."

"에이~ 잠깐만 이야기해요."



그 사이 열차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겨우 2~3분 정도 번 셈이다. 이제는 이 사람에게 해명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내가 왜 당신을 붙들었으며,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길래 타야 되는 열차까지 놓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그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아무 이유 없이 손님의 시간을 빼앗았다민원이 들어올 뻔하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그가 상당히 높은 톤으로 말했다.


그가 상당히 높은 톤으로 말했다



"나랑 이야기하고 싶어? 나에 대해서 뭐가 궁금해?"



역으로 먼저 물음을 던지는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보통의 손님이라면 자기 갈 길을 막은 역무원을 저렇게 활짝 웃으면 반겨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는 내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 내가 본인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자못 기쁜 표정이었다.



"아, 음, 그러게요. 음,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나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는 지금 어디에 계세요?"

"아빠. 공장. 아빠는 공장에 있다."

"아하 그렇구나, 아빠 공장이 어디예요?"

"엄마가 가지 말랬는데 내가 나왔다." 



조금만 대화가 길어지자 그가 동문서답하는 것무언가 빈 공간이 느껴지는 그의 묘한 문장 구성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또래보다는 지능이 조금 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처음 보는 역무원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집 수저 개수까지 알려주고 있을 때쯤 경찰관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역무실로 이해관계자들을 데리고 가서 추가적인 조사를 했고, 신고자이자 남성과 가장 오래 대화를 나누었던 나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본 것을 이야기했고, CCTV에 담긴 장면들은 그것을 뒷받침했다.






나는 판사가 아니니 판단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의견 개진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 지능과 성범죄는 별개이다. 다만 그를 위한 짧은 변을 해보자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 대화 시도한 점과 자신에게 말을 건 나를 한껏 반기는 행동으로 미루어보건대 어떤 범죄의 목적을 가지고 피해 여성에게 말을 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환승통로는 어림잡아 400~500m의 외길인데 그러다 보니 환승하려는 손님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가 피해 여성을 쫓았다기보다는 그저 방향이 같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다.


환승통로는 외길인 경우가 많다



경찰관도 나와 의견을 같이 했지만 피해 여성의 주장이 너무 강력하니 일단 경찰서로 모시고 간다고 했다. 혹시 진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한 뒤 휴대폰 번호를 남기는 게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그 후로 시간은 3년 넘게 흘렀지만 나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고, 사건 또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어서 많이 아쉽다.


오늘 갑자기 그 날이, 그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정말 성범죄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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