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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두 Jan 26. 2021

새벽에 지하철역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오늘 우리 역의 열차는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승강장이나 대합실, 화장실에 계시는 손님께서는 역 바깥으로 나가셔서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역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문을 폐쇄할 예정입니다."




자정이 넘어간 시간. 막차가 끊기고 머리 위에는 영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 역무원인 나는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키 뭉치를 들고 다니 분전반을 하나씩 열어 불을 끈다. 도중에 만나는 손님들에게는 더 이상 열차가 없다는 사실과 출구를 안내해드린다. 승강장부터 출구까지 싸악 훑고 올라온 뒤에는 마지막으로 셔터를 내린다.



이제 지하철역은 캄캄해지고 남아있는 사람은 직원뿐이다. 아니, 이어야 하는데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손님들은 위와 같은 절차라면 모두 나가실 수 있다. 문제는 오늘 밤을 무조건 지하철역에서 보내려고 마음을 먹으신 분들이다. 잠잘 곳이 없다든가 비를 피하기 위해서라든가 등 각자의 변명이야 있겠지만 우리 또한 시설물을 보호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불 꺼진 어두운 지하철역에서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술래는 역무원. CCTV를 확인하고, 사각지대는 직접 둘러보며 화장실은 칸칸이 문을 다 열어본다. 스포츠에서 원정팀보다는 홈팀이 유리하고, 하물며 똥개도 지 구역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역구조를 샅샅이 꿰고 있는 역무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숨어있는 사람 한 둘 찾는 건 일도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화장실 살펴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문을 하나씩 밀어 보면서 확인을 하고 있는데 제일 안쪽 칸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닫힌 문 아래로 내부를 슬쩍 보았으나 사람이 앉아있다면 응당 보여야 할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잠가두곤 한다. 이 문도 으레 그럴 것이라고 넘겨짚고 돌아나가는데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마다 유달리 수압이 약한 변기가 몇 군데 있어서 사실 막히는 곳만 막힌다. 그러니까 잠겨있는 문만 잠겨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칸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노크와 '안에 누구 있냐'는 물음을 여러 번 반복하였으나 화장실에는 내가 내는 소리만 가득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 카메라 기능을 켜서 화장실 문 위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사진을 확인한 나는 기겁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진 속에는 어떤 사람이 변기 위에 올라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 봤다고, 거기 사람 있는 거 다 안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연장을 사용하여 화장실 문을 통째로 뜯어버렸다. 그제야 그 사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서 나가는데 화가 뻗쳐서 등 뒤에다 대고 시원하게 내 할 말을 다했다. 그래야 속이라도 시원하니까.






또 한 번은 이런 경험도 있었다. 셔터를 내리고 역무실에 들어와서 CCTV를 보니 누군가가 불 꺼진 벤치에 앉아있었다. 잔뜩 투덜거리면서 그 장소로 갔더니 화면 속 그 사람은 20대 외국인 남성이었다.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기서 뭐하세요? 지하철 끝났습니다. 밖으로 나가주세요."

"나 여기서 엄마 만나기로 했어요."

"지하철이 끝나고 셔터가 내려와서 어머님은 여기로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래도 나 여기서 기다려야 돼요."


막무가내였다. 여기로 들어오려면 지하철이 다니는 터널로 들어오거나 아니면 셔터를 끊고 들어와야 되는데 평범한 여행객이 그런 짓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만약 어머님을 찾는 거라면 경찰을 통해 도움을 드릴까라고 물어보는데도 이 벤치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무조건 자기는 여기서 기다려야겠다고만 했다. 뭐 더 길게 이야기해서 뭐할까. 지구대가 있는 출구로 모셔다 드리고 필요하면 방문하시라고 안내해드렸다. 아, 당연하게도 그분이 자기의 발로 걸어 나가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는 아시리라 믿는다.






식당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재료를 손질하고, 새로운 메뉴 개발하는 등 다음 영업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없다면 다음 장사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영업 종료 후 지하철역에 불이 꺼졌다고 모든 것이 멈추는 것 아니다. 안전한 내일의 지하철을 위해 많은 직원들이 밤잠을 포기하고 점검, 수리, 청소, 소독 등을 하는 시간이다. 오늘 밤에 우리가 할 일을 마쳐야 내일 지하철이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다.


그래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오늘 우리 역의 열차는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승강장이나 대합실, 화장실에 계시는 손님께서는 역 바깥으로 나가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역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문을 폐쇄할 예정입니다."





숨어봤자 어차피 다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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