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지하철을 살펴보자, 이렇게 언덕이라고? “꿈의숲 vs. 래미안월곡"
남편과 나는 결혼하기 전에 J의 집에서 자주 만났다. 그 당시 혼자였던 그는 동대문의 아파트에서 앵무새를 키우며 살았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신축에 넓은 구조, 소위 말하는 국평. 우리 둘은 그의 집이 내심 부러웠다. 저녁을 먹다가 밤이 되면 서울 하늘 아래 야경이 쫙 펼쳐지고, 거기서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으면 ‘성공한 삶은 이런 게 아닐까’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느 정도 발 맞춰 산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처럼 돈이 정말 많은 사람만 집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집이 있는 그와 집이 있는 우리 사이에는 선명한 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어떻게 이 좋은 집을 샀느냐고 물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집 사라고 많이 떠들고 다니지 않았냐, 그때는 미분양이 나서 쉽게 줍줍이 가능했다. 대출도 잘해줬다, 내가 집 사라고 해서 집 산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모두 웃었지.”라고 덧붙였다.
그의 집은 두 배를 뛰어넘게 자산 가치 상승을 했고 우리 눈에 그는 조선시대 부잣집 대감마냥 느껴졌다. 우리도 집을 살 수 있을까?
L은 동대문은 개발이 아직 되지 않아 저평가가 된 곳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고 정리가 된다면 고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는 더블 역세권이니 그만큼 좋은 위치에 있다고 얘기했다. 이때 한 가지의 지식을 습득했다. 역세권! 역세권을 사야 하는 거구나. 인터넷을 뒤적거리고〈부동산 스터디〉카페에 가입을 했다. 거기서 말하는 네임드라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블로그를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공통적인 의견에 따르면 자산의 상승을 불러오는 집을 사려면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했다.
역세권, 대단지, 학군!
이 세 가지를 머릿속에 넣었다. 호갱노노라는 어플을 깔았다. 이름이 이게 맞나 싶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을 찾을 때 쓰는 어플이었다. 들어가는 순간 신세계가 펼쳐졌다. 몇 가지의 필터를 조건으로 넣을 수 있고 지도를 움직일 때마다 몇 명이나 여기를 보고 있는지 동시에 집계가 되었다.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이고, 주간별 실거래가 많은 곳은 왕관 모양으로 상위랭크가 되었다. 별천지 그자체인 곳에서 몇 번 지도를 움직였다. 오직 역세권 그 단어 하나로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였다. 내가 아는 역…. 부동산에 문외한인 나도 합정역, 강남역 같은 곳은 이미 비쌀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다시 몇 군데 기억나는 역을 찾았다. 동대문, 대흥…. 내가 자주 움직이는 곳들에 점을 찍어보았다. 그리고 역세권이라고 불릴 만한 아파트들의 가격을 살펴보았다. 이미 살 수 없는 저 나라의 가격이라는 걸 깨닫고, 사람들은 어떻게 역세권의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서울의 역은 한정적이다. 역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들 또한 한정적이고 역 코앞은 상권으로 분류된다. 한마디로 많은 역세권을 누군가가 선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초록색 창에 지하철역 키워드를 누르고, 뉴스를 켰다. GTX 열풍이 한창이던 그때에 저 기사 밑으로 새로운 역이 생긴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 아직 역이 없지만 곧 생길 곳 근처에 아파트를 구입한다면 그 아파트는 역세권이 될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 역이 생긴다면 딱 세 번 가격이 오르지. 첫 번째는 지하철역 생길 거라고 공시한 이후, 두 번째는 첫 삽을 떴을 때, 세 번째는 완공되었을 때. 그렇다면 나는 완공 전에만 들어가도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한국의 지하철역세권 순위는 아주 단순했다. 무조건 강남이랑 가까울 것. 강남역이 있는 2호선. 혹 그게 아니라면 강남역으로 이동할 때 환승이 편리할 것. 그 중심으로 새롭게 뻗어나가는 지하철역은 오직 한 가지 노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동북선! 동북선은 완공이 되지 않은 곳으로 왕십리를 환승해서 빠르게 강남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노선이었다. 인터넷에는 이미 동북선이 지나가는 위치가 나와 있었고, 난 그곳을 중심으로 우리가 볼 만한 아파트를 추리기 시작했다. 일단 역세권이라는 조건을 맞췄으니 다음 조건을 맞춰야 했다. 대단지에, 근처에 학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초등학교를 품고 있을 것. 게다가 나의 바람을 조금 더 넣어서 너무 오래되지 않은 2000년 대 초반 이후 건설된 곳. 목표물을 확정하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임장 예약을 했다.
- 래미안월곡을 검색했을 때, 월곡래미안루나밸리가 나올 수 있으므로 헷갈리지 않기! 근처에 창문여고가 나름 괜찮은 학군이랍니다. 실평수보다 더 시원시원하게 빠진 건 매우 장점! 언덕이 많으니 꼭 운동화 신고 임장 가기!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서울에 오래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어쩐지 주위가 낯설었다.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고 상점들과 아파들이 올망졸망 제 위치에서 안정되게 자리를 잡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울 중심부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닌데 어쩐지 이곳을 우리가 부르는 서울이라고 말하기엔 살짝 모자른 느낌이었다.
길 건너편에 고등학교도 보였다. 가족들이 무리지어 길을 건너는 동네 풍경을 확인하고, 어수선한 한 켠에 동북선 공사가 한창인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안심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래. 내가 원하는 역세권이 바로 이곳이잖아! 분명 완공이 된다면 역세권 아파트의 가치를 누리며 자산 가치 상승을 경험할 수 있어!
그곳은 세 아파트가 붙어 있는 곳이었다. 동북선 역과 가장 옆에 붙어 있는 아파트는 1000세대, 그 옆 아파트는 700세대, 그 옆 아파트는 2000세대쯤이었다. 대단지라는 건 두말할 것 없었다. 게다가 세 아파트 가운데는 초등학교를 품고 있었다. 세 가지의 조건이 모두 만족되는 곳. 다시 한 번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는 걸 확인하고 세차게 부동산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가 잠시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한마디 붙였다.
“운동화를 신고 오시지, 일단 집을 보러 갑시다.”
그때는 왜 아주머니께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비로소 잠자기 전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우리는 가장 비싸고 그리고 가장 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부터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꽤 언덕이 있었다. 하지만 대단지인 만큼 아파트 단지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래미안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기대감 또한 썩 만족스러웠다. 2006년 식으로 단지 조경만큼이나 아파트 내부도 좋을 거라고 예상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부동산 아주머니를 따라 7층에 내렸다. 행운의 세븐! 이제 나의 집을 찾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첫 집의 문을 여는 순간 체리색의 몰딩부터 눈에 들어왔다. 06년 식이 생각보다 그리 최근에 집은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신기한 건 거실 내부에 자리한 집안 화단 장치였다. 부동산 아주머니 설명에 따르면 그래서 이 시기에 지은 집들이 평수보다 서비스 면적이 넓게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비쌌고 매도인 또한 이 근처에 가장 대장 아파트라는 것에 중점적인 포인트를 두며 말했다. 세 가지 조건도 충족했고, 래미안이라는 브랜드인데 분명 모든 조건을 충족했지만 이 가격으로 이 아파트를 사는 게 맞나 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썩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었다. 옆에 아파트가 있으니까 이 집은 본 거로만 하자는 생각으로 다음 집으로 향했다.
바로 옆단지인 월곡 꿈의숲푸르지오로 향했다. 이번엔 가격이 아주 맘에 들었다. 급매로 나온 거라고도 했고, 10년 식이라서 좀 전에 봤던 아파트보다는 분명 내부 상태가 좋다고도 했다. 부동산 아주머니를 따라 단지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올라가도 올라가도 언덕이지? 슬슬 발이 아파왔다. 그런 나를 빠르게 눈치챘는지 부동산 아주머니는 이런 곳에 살면 공기도 좋고, 처음에만 언덕이란 생각이 들지 자주 언덕을 오르다보면 체력도 붙고 생각보다 높지도 않다고 말했다. 가빠오는 숨소리를 죽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급매이고 가장 싼 대신 우리가 볼 아파트는 이 단지에서 가장 끝에 있었다. 한마디로 가장 높은 곳의 집을 임장한 것이었다. 서울은 평지가 별로 없다는 소리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찰나의 등산을 접고 임장한 집은 예상대로 내부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05년 식과 10년 식은 꽤 차이가 있었지만, 임장을 끝내고 다시 정문으로 내려오면서 이 정도의 언덕이라면 눈이 오는 날은 괜찮을까? 비가 오는 날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두 집밖에 보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내 맘에 드는 집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역시 집은 남자 고르는 것과 똑같다 했어. 육각형의 집을 만나긴 어려운 거야.
내 앞에 펼쳐질 저 길고 긴 임장의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머릿속에 펼쳐졌다. 더불어 함께하는 이의 짜증스러운 말투와 한숨도 예상됐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피로감을 주는 일이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그래도 온 김에 옆에 있는 아파트도 마저 보고 가라고 말하셨고, 동네 구경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이미 나는 06년식도 오래됐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마지막으로 볼 집은 03년식었다. 하지만 2000세대라는 넓고 넓은 단지 덕분에 초등학교 가는 길이 제일 가깝고 비록 10분 이상 걸어야하지만 동북선 말고도 6호선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번엔 정말 더 오래된 아파트의 문이 나타났다. 아 맞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이런 아파트에서 서서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인사를 하던데. 사실 나는 결혼하기 전 까지는 단 한 번도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유년 시절 주로 2층이나 혹은 3층 같은 지방 단독주택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이런 아파트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서울에서 굳이 왜 아파트에만 살아야 하는지도 의문스러웠던 적이 있다. 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데 주택보다 비쌀까? 주택은 온전히 한 사람이 토지를 소유하는 건데, 왜 사람들은 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할까?
혀튼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하기로 하고 내가 당도한 아파트 월곡두산위브는 끝없이 넓었다. 이미 앞에서 오래된 아파트에 대한 경험을 서서히 하고 온 터라 내부도 생각보다는 많이 안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가격도 아주 저렴했다. 하지만 여기서 살래?라고 물어본다면 일생일대에 지나가는 집이 아닌 오직 나의 집이 몇 채밖에 안 될 텐데 매매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래미안월곡, 꿈의숲푸르지오, 월곡두산위브. 세 군데를 보며 부동산 아주머니가 가장 추천한 곳은 래미안월곡이었다. 동북선이 완공되면 당연 초역세권이 될 곳이고 래미안이 주는 브랜드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가격 부담에서 오는 마음 정도와 나의 만족감은 평행을 이루지 못했다. 그중 그래도 나는 꿈의숲푸르지오 가격대비 괜찮다고 느꼈지만 그날 밤 나의 뒤꿈치를 보고 생각을 접었다. 언덕은 아닌 거 같아…. 같이 사는 이의 코골이 소리가 그날의 피곤함을 대변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