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의 시작
그는 나와는 좀 생각이 달랐다. 일상을 즐겁게 살고자 했으면 순간을 영원처럼 노래하며 살았다. 가끔은 파워 p인 그에게서 짜릿함 일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곧 너무 무계획하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물론 나도 p다. p와 p가 만나면 p력이 더 강해질까? 그렇지 않다. 좀 약한 p가 J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 인생은 어쨌든 순간만을 즐길 수 없고 끝까지 살아야 하는 법이니까. 삶의 지속은 내가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기질 저 끝에 있는 J를 간신히 붙잡아 그에게 말했다. J를 불러온 건 아마도 어떤 본능이었을까.
“집을 사야겠어.”
“집을 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왜 집을 사?”
그는 순간을 사랑한 만큼 미래의 불안함을 용납하지 않았고, 현재의 향유를 버릴 생각도 추호도 없었다. 원래 천성이 한량 기질이 있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저축하고 적당히 쓰면서 그 사이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자 하는 게 그의 삶의 목적이자 과제였다. 물론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한다. 무료하고 지루한 내 삶에서 그를 만났을 때 단비 같은 즐거움을 맛본 건 사실이니까.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나간다는 게 무엇인지 그를 만나고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으로는 내 성에 차지 않는다. 나는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욕심 그릇을 타고난다. 그가 간장 종지 같은 욕심 그릇을 타고 났다면 난 냉면 그릇 같은 욕심 그릇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의 욕심 그릇은 소소한 일상 순간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나를 부축였다.
“지금은 젊어 괜찮지만 우리는 곧 나이를 먹을 거고 그러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고, 최소한의 노후가 필요해.”
“그게 집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데? 나는 지금처럼 전세로도 충분해.”
“전세 끝나면 이사 가야 하잖아. 든든하게 내 집을 깔고 앉아서 집값이 오르는 걸 보며 살면 훨씬 안정적일 거 같아.”
“대출받아 사는 집이 오를 수 있다고 어떻게 호언장담할 수 있는데?”
“그건….”
극 P이지만 강력한 T였던 그는 내 말끝마다 논리적인 근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인생도 처음인데 집 사는 꿈을 꾸는 것도 처음인 내가 논리가 있을 리 있었을까. 그것은 막연한 욕심에서 시작된 일이었으나, 그 막연한 욕심은 내 미래를 안정되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자라난 건 어쩔 수 없었다. 매번 그에게 각종 근거를 대기에 바빴다. 단란한 가족상을 제시하며, 그것은 안정적인 주거 형태로부터 기인한다고도 말했고 대출을 받으면 절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긴다는 동기부여도 있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심어진 환상을 마구 끄내어 그에게 펼쳐놓고 같이 꿈꿔주기를 설명했다. 우리는 때때로 이 주제에 대해 토론했고, 그는 좀처럼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막 집값이 절정기를 넘어 하락장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가는 것을 볼 수 없다. 나는 핸드폰에 호갱노노를 깔고 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고, 부동산 투자의 일가견 있다는 몇 투자 블로그들도 꾸준히 팔로잉하며 읽기 시작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곤 못할 게 뭐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동산의 부자를 모르다 못해 경제 뉴스도 안 봤던 내가 쉽게 부동산의 논리를 파고들기에는 분명한 부딪침이 존재했다. 물론 이 와중에 그와 나의 말 겨루기는 계속되었다.
밥을 먹다가도 대출을 하면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그와 밥을 먹다가도 집이 있으면 맛없는 밥을 먹어도 행복할 거 같다는 나는 종종 맞섰다.
“집이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거 같아.”
나의 첫 번째 관문이 그가 된 거 같았다. 시장은 하락장을 더 깊게 파고들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데이트를 빌미로 임장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서 보자, 지금 사자는 건 아니고. 미리 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게 다 인생 공부가 아니고 뭐겠어?”
꾸준한 시달림을 받은 그는 더 이상 물러 설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듯 공부의 한해서는 괜찮다고 의견을 붙였다. 물론 계획은 자신의 몫이 아니고, 자신의 몫은 임장을 한 후 맛집을 탐방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운전을 너무 오래하는 것도 안 되고, 차가 밀리는 것은 더더욱 싫으니 주말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마치 무언가 내어주듯 선심 쓰는 듯한 그의 말투가 얄미롭기 그지 없었지만 내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임장을 해야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다는 명확한 목적물이엇다. 최대한 그가 말한 것을 지키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원하는 집을 찾을 때까지 오래도록 임장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다 맞출 수 있어!”
이렇게 우리는 약 1년간 임장이라는 취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