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제왕의 스승 장량
지난해 ‘결국 이기는 사마의(친타오 지음, 더봄 출판사)’를 단숨에 읽었다. 침착맨의 추천으로 가볍게 읽은 책이었지만, 그 자리서 무겁게 책장을 넘겨 나갔다. 하루 만에 읽은 책이 얼마만이었던가.
다 읽고 나서 “대단하다” 생각뿐이었다. 30년 넘게 삼국지는 유관장 삼형제나 조조, 제갈량 중심으로 알고 있던 내게 ‘결국 최종 승자는 사마의 었다’는 정답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그리고 인내로 귀결되는 사마의의 태도를 최대한 뇌리에 새기며 살아왔다.
큰 울림을 잊고 지내던 2023년 마지막날, 같은 출판사의 유사한 디자인의 책 ’제왕의 스승 장량‘과 ’난세의 리더 조조‘ 2권을 발견했다. 순간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고민도 없이 바로 구매했고, 다음날 하루 만에 제왕의 스승 장량을 완독했다. 책을 덮었을 때는 결국 이기는 사마의를 읽고 느낀 울림이 다시 한번 솟아올랐다.
책에서는 장량의 진시황 암살실패 사건부터 시작해 한나라 유방의 사망과 유후에서 신선으로 거듭나는 그의 일대기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유방과 항우가 펼친 초한대전과 한신, 소하의 말로 등 핵심적인 사건을 초한지에 대한 배경이 없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중간마다 구글로 초한지 시대지도를 살펴보며 읽었다.
무엇보다 책은 장량이 중요하게 생각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조명한다. 유방의 한나라를 만드는데 최고 공신 ’건국 삼걸‘ 중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건 장량뿐이었는데, 그의 생존이유는 ’메타인지‘다. 주변에서 최고라고 치켜세워줘도 자신의 위치를 냉철하게 판단했고 또 이에 기반해 언제 물러나야 하는 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대장군 한신의 위세는 황제였던 유방에게 줄곧 눈엣가시였고, 내정을 치밀하게 관리해 극찬받던 소하도 결국 말 한마디에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됐다. 여기서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물러나 세상과 멀어지며 신선으로 거듭나고자 했고, 자신의 고향인 ‘유후’에서 삶을 마무리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그가 불로 조리한 음식을 멀리하고 자연에서 난 생식(과일 등)으로만 살고있다 표현하며 그의 정결한 삶을 조명한다.
책장을 덮고 멀미가 났다. 집중한 탓도 있지만 삼국지만 알고 초한지를 모르고 지냈던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불쾌함을 씻고자 초한지 관련 콘텐츠를 연이어 보고 있다. 긴 호흡으로 읽어나가야 했던 삼국지가 야구라면 초한지는 속도감이 있는 농구처럼 느껴졌다. 유방과 항우의 1:1 구도인 점도 매력적이었고 항우, 범증 등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도 흥미 요소였다.
삼국지와 함께 성장한 나는 ‘나의 자방‘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조조가 순욱을 가리킬 때, 세조가 한명회를 칭할 때 등 군주가 자신의 최고 참모를 극찬할 때 쓰는 말이다. 그 말의 어원도 모른 채 살아오다 이 책을 만나며 초한지에 눈을 뜨게 됐고 드디어 ‘나의 자방’을 잊을 수 없게 됐다. 또 천하제일연회, 한신-팽월-경포로 초나라를 공략한 계략, 젓가락으로 제시한 여덟가지 반문 등 역사의 귀감이 되던 순간들도 장량이 주인공이란 점을 알게 됐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패기넘치는 청년이 산속에서 10년 넘게 수양해 한나라의 건국을 이끌고, 자신의 물러날 때를 명확히 알던 최고의 인간군상 장량을 2024년 첫날 만나 정말 기뻤다. 수십 세기 이전의 명사인 사마의로부터는 ‘인내’를, 장량으로부터는 ‘절제’를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다음 책‘난세의 리더 조조’가 기다리고 있다. 사마의 이전에 가장 좋아하던 인물 조조는 또 어떻게 표현될지, 무슨 깨달음을 줄지 기대와 함께 책을 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