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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Joo Lee Mar 14. 2016

그녀에 대하여

아직 춥지만 겨울이 간 것 같다. 매년 봄이 올때면 내가 잘 살아있음에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왠지 모르게 봄은, 감정이 추위에 무더져 갈 때쯤 우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민감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십년도 더 전에 무척이나 사랑하던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고작 이십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그녀는 그 해 가을을 다 보지 못했다. 그녀없이 맞이하는 겨울은 너무나 혹독해서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단다... 그런데 돌아오는 봄이 더 기가막혀, 내 눈앞에 펼쳐지는 그 싱그러움이 잔인해서, 매일 매일 주저앉아 울기를 반복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감당하기 무거운 그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해서 내내 그렇게 불행한 공기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상태로 계속 살아가야 할지 의문도 들었고, 분노도 생겼고, 자책도 하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와의 시간들을 어떤 중요한 의미로 남기고 싶어했던 것 같다. 잊지않도록, 우리가 그녀를,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라고.

나는 대체로 이러한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항상 과도한 눈물에 익사할 지경이었다. 몇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녀와 관련된 모든 시간과 감정들은 해소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이미 그것들은 나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나'인 것이다. 내가 숨쉬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함께 할 것이며, 나의 무거운 짐이며, 나의 가장 아픈 곳이며,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내 그림들이 항상 그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젊은이의 모습들, 그녀 없이 처음으로 맞이했던 봄에 어느 철거지역, 아무도 없는 곳, 언제나 자꾸만 떠오르는 그녀와 나의 시간, 우리가 함께 했던 여성주의 동아리, 유치하고 어설픈 투쟁,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 젊고 신나는 눈빛들... 그런 것들. 그 그림들이 나에겐 너무나 아파서, 그 감정들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내 소중한 삶과 시간이 쌓인 그림들.

재작년에 세번째 개인전을 부산에서 끝내고 나는 많이 아팠었다. 내 작업들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마치 타인의 고통을 슬쩍 이용한 듯 받아들여지는 미세한 분위기에 내내 엉뚱하게 변명하다 결국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언제나 그녀가 곁에 있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새삼스레 해보았고 무언가 감정과 표현이 성장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실은 여기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오래간만에 그녀가 잠들어 있는 추모공원을 가고 싶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내내 마음에 걸려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이 영 마음에 걸린다. 임신한 나도, 좋은 남편도, 내가 너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지난 십년 간 나는 이 이야기를 셀 수 없이 하였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하였는지 제대로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이다. 게다가 글로 쓰기는 또 얼마나 많이 썼는지. 쓰고 지우고 말하고 잊고 를 수십 수백번은 한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취하기 시작하면, 아주 처음부터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게 된다. 그 덕분에 욕도 많이 먹었고 같이 울어준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이렇게 내 고통의 침묵과 거리가 멀게 살아왔지만, 나는 언제나 침묵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언제나 침묵했다. 나는 언제나 말하지 못함의 갈증에 시달렸다. 매번 이게 마지막 이야기가 되어줄 꺼라고 믿어보려 했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결코 마지막은 없다. 때가 되면 나는 다시금 모든 감정들을 파헤치는 고해와 기억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밤, 바로 그 밤에 그녀가 나에게 준 기회를, 내가 그녀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그 댓가는 나의 몫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더이상 내 삶을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와 연관된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국 이 모든 일들의 의미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보고 싶어요

캔버스에 유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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