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울기도 한다. 마치 예고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처럼 나는 옛날의 얼굴을 하고는 조용히 울어버린다. 내가 조금 잘 우는 편이기도 하지만... 항상 이런 눈물젖은 우울감에 휩싸일 때면 작업실에 틀어밖혀 문을 잠그고 홀로 숨쉬고 있다는 그 느낌이 큰 위안이 되었다. 과거에 푹 쩔은 그 감정으로 그림을 그릴 때면 내 삶이 징그럽지만 좋아지곤 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무슨 시공간에서 불시착 한 것처럼 지금 상황을 대면하게 될 때면 앞이 막막하기도 하고 그저 멍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남편이 좋은 사람이다. 한 사람의 다양한 면들을 싫어하지 않고 바꾸려고 하지도 않고 그대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 쯤은 나도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혼자의 위안이 그와 함께라면 무용하게 느껴졌고 나는 햇빛이 비치는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끔씩 밀려오는 막무가내의 울적함을 막을 길이 없었다. 간간히 참기 힘든 감정들이 요란을 떨어도 혼자 조용히 보내버리고는 했는데 며칠 전 남편의 아주 사소한 행동들에 외로움을 느끼고는 아주 제대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도무지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을 찾지 못해 우선은 이렇게 표현하고 만다.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빨래처럼 정리된 줄 알았던 내면의 감정들은 다시, 한 세시간 정도 수영하고 나온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온통 내 주변을 떠다니고 그 무거움에 말하기도 버거워 지저분한 이불처럼 침대 위에 구겨져 있는데 내일이... 그 다음날이... 정말 막막하더라. 나는 말을 더듬더듬 하였고 계속해서 울었고 아무리 달래주어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울곤 했다. 밤에 울면서 잠이 들고 아침에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는 사람만 아는 어떤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남편은 내가 소리도 없이 울어도 조용히 다가와 안아주었다. 내가 혼자 남겨질까봐 무서웠고 내가 혼자 사라질까봐도 무서웠다. 그 동안 아무렇지 않게 바보처럼 지내온 시간들 속에서 아주 조금씩 쌓인 혐오가 넘쳐 흘러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냥 어디론가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거 있잖아...
참 많이 아끼고 사랑해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내가 이 징그러운 우울의 눈물을 쏟아내는 일들에 대하여 그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항상 이해해주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잘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나를 혼자 있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나도 힘을 내야 한다, 이제는.
최근에 친구의 친구가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나와 동갑인 그 여자는 예쁘고 잘 살고 의사남편에 어린 딸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인 아주 힘든 일도 겪었다고 들었다. 그녀의 비보가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은 너무나 멀리 있어서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친구를 잃은 내 친구는 꼭 십년 전 나와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래도 나만큼은 아니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