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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Joo Lee Feb 18. 2016

8

임신 8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부담스러운 일들도 있었고 조금 아프기도 했고 엉망진창으로 그림도 그리다 말았고 매일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바빴다. 배가... 이렇게 거대하게  나오는구나, 싶은데 앞으로는 더 나올 꺼란다. 최근에 친한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 먼 곳까지 나를 보러 와주어 정말 고맙기  그지없었다. 나도 예전에, 자유롭고 메마른 영혼이었을 때 이런 배부른 상황이거나 아이에게 묶인 언니들을 종종 찾은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잘한 짓이더라.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나보다 한살이 많은 언니는 뒤늦게 의사 공부 중인데 너무 바빠서 누굴 만날 여력이 없다며 나의 결혼과 임신을  부러워했다. 그 마음 역시 십분 이해하지만 부러워할 거 없다며 웃고 말았다.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시간 동안 정말 신기했던 게, 나는 언제나 그 언니의 자리에서 지금의 나 같은 지인들을 만나곤 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모든 상황들이 뒤바뀌어 버린 것인지 궁금했다. 심지어 힘든 일을 겪고는 매우 여윈 언니의 모습은 예전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았고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던 모습에서 10킬로가 더 붙은 상황이다. 배는 말할 것도 없고 허벅지며 팔뚝이며 무섭게 살이 붙는다. 되게 웃긴 건 예전처럼 잘 굶지도 못해서 끊임없이 입으로 뭔가를 주워 넣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걸음걸이 조차 변했다. 임신이라는 일을 배만 뽈록 나오는 단순한 상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매 순간이 너무나 버겁고 당황스럽다. 아, 이렇게 어렵구나 받아들이다가도 급격하게 우울해지고 청승을 떨게 된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다 보니 좀 예민하고 고민이 필요하고 거기다 어떤 시스템 없이 일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임신은 정말 너무나 너무나 삶을 어렵게 만든다. 물론 다른 일은 임신과 병행하기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뭐랄까 사람이 뭉툭해지고 무뎌지고 무력해지는 면들이 작업의 과정을 매우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또 사용하지 못하는 재료도 많고 여러 제약도 늘어난다. 어떻게든 무언가를 그려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조차 이젠 모르겠다. 그릴 수 있는 것들을 그려보자 싶은데 작업도 임신만큼이나 간단치가 않아서 말이지.

문제는, 올해 연말에 나의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은 온통 그 개인전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에 쏠려 있다. 임신 8개월 차에 들어선 게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낳기 전에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그려야 할 판에 이렇게 멍만 때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몸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초반에는 입덧으로 고생을 했고 중반부터는 신우와 방광에 염증이 생기면서 내내 아팠다. 지금도 여전히 속은 불편하고 내 신우와 방광 역시 안녕하지 못하다. 거기다 이젠 몸도 혼자 움직이기 어렵달까. 어쩌면 좋지... 다들 낳으면 더 하다는데 일단 그 말은 낳은 후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선은 아기와 한 세트로 묶여있으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 게 당연하겠지. 이 세상에 인간을 한 사람 내어놓는데 그게 어떻게 간단명료한 일일까.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과 막막함, 하긴 할 수나 있을까 싶은 걱정들, 이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 내 삶의 일상들까지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언제나 너무나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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