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Joo Lee Jan 09. 2016

떠도는 구름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몇달 전 결혼을 앞두고, 십년을 먼저 결혼한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결혼하더라도 외롭지 않을꺼라는 그런 기대는 안하는 게 좋을거야' 

나는 대체로 외로움을 발산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저런 말은 굳이 담아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살짝 아픈 부분이기는 했다. 우리는 언제나 항상 얼마나 더 외로워야 하는 걸까. 그 마음은 왜 그렇게 우리의 어두운 한 구석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 존재의 어떤 본질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외로움 속을 탈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업을 한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아주 축복받은 삶의 방식이 되어 주었다. 다시 말해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외로움 등 여러가지 내적인 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굽어보고 그것에 형상과 언어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비교적 가벼운 표정의 삼십대 중반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십대를 고스란히 보낸 서울을 떠날 때 나는 그 속에 연결되어 있는 많은 사람과 시간과 경험과 감정까지도 조금씩 떠나 보내야 했다. 그리고 삼십대의 전반기를 보낸 부산을 떠날 때에도 물론 마찬가지 였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시간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완전히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지만... 그래서 말인데 요즘 간간히 마음이 조금 적적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사 온 작은 도시는 너무 낯설고, 항상 나를 위하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남편은 최근 일이 많아 바쁘기에 그 적적한 마음은 커져만 가는구나. 이런 감정들은 너무나 복합적이라 누구 한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상황의 개선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말 그대로 우리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많은 종류의 외로움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친구, 언제나 전화 통화가 반가운 사람, 일을 통해서 만들어진 관계들, 같이 술마시면 너무나 신나는 멤버들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일상은 인간 관계로 뒤덮혀 있는데 그 속에서 연인, 혹은 동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 하더라도 그 모두를 대신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언니의 충고가 남편을 통한 외로움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다양한 욕망들이 결혼 생활과 함께 많은 부분 자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아, 물론 인간의 사적인 감정은 글처럼 명료하지 못할 것이다. 


외로움은 존재의 본질일 뿐이며, 비교적 가벼운 표정의 삼십대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결국 낯선 일상 속에서 자리 잡기는 더욱 더 낯선 외로움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결혼과 임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변했고, 또 내가 변했을 것이라 보는 시선들이 있고, 변화하는 관계들로 다시 나는 변하고, 그렇게 변하고 또 변하는 시간 속에서 솔직히 예전의 마음들을 둘 곳이 없다. 그리고 또 왠지 모르게 이런 이야기들은 꺼내면 안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내가 급작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큰 이유 중에 하나가 결혼이라는 사건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겨서 였다.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삶의 변화는 지속되어 오던 무언가를 떠나 보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최근에 많이 든다. 어쩌면 나는 내가 불편해하고 불만을 가진 변화의 시선들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서른 평의 작업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익숙한 캔버스에 유화물감도 더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 작은 종이에 아크릴 물감으로 연습을 하려는데 손과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그림의 화면이 너무나 작아져서 그런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지나치게 크다. 게다가 몸이 무겁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작업을 하는 시간은 언제나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자 고통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숨을 쉬며 살 수 있는데, 그렇게 내 무거운 감정들을 달랠 수 있는데, 결혼 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런 진부한 표현이 비논리적으로 들릴지언정 작업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넋 놓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잘 안 될 때는 언제나 매일 매일 낯설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예전의 작업들이 수월하게 그려진 듯 착각하고 있지만, 내 인생에서 단 한번도 그림 그리기는 쉬웠던 적이 없었다. 또한 내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 현재의 외로움도 언제나 나와 함께 하던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양한 관계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믿었던 시기에도 항상 적적해하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외로움의 근원에 대해 잦은 고민을 해 보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돌고 돌아 지금 이 상황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 글의 서두에 언급된 언니의 충고다. 나는,어쩌면 생각보다 결혼에 기대한 바가 꽤나 컸구나... 다시 한번 더 이 헛된 기대를 정리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예측 불가능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