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Joo Lee Jan 07. 2016

예측 불가능한

unpredictable

그래도 끝까지 끝을 맞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선택해서 삶의 어떤 변화를 맞이할 때 그 모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테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모든 것이 변할 줄은 몰랐지. 그러하다,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들. 다시 솔직히 말하자면 열심히 준비했고,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언제나 마음의 준비를 하였고, 소소한 이별의 인사도 늦지않게 빠짐없이 했다. 그렇지만 낯선 변화들은 언제나 체감상 급작스럽다. 마치 내일의 사건들, 구체적으로는 사건들로 인해 나타나는 감정의 상태들을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비교적 큰 굴곡없이 자랐다. 물론 나라는 개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어느 것 하나 굴곡없는 게 없겠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우선 접어두고... 내내 비슷한 곳에서 살았고 내내 비슷하게 생겼고 주요 가족 구성원도 같았고 충격적인 변화나 큰 감정의 기복없이,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자라왔다. 가장 커다란 이슈는 내가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로 학교를 다니러 온 일 정도. 그렇게 내 삶은 여전히 비스무리하고 잠잠하게 제 2막을 맞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의 이십대는 질풍노도의 사춘기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방황으로 표류하기 시작하였고 마치 그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나는 도무지 그 공허한 미로 속에서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서른의 끝자락에 고향으로 도망치듯 숨어들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버리고 마치 인생의 한 조각이 부서진 것 마냥 상처입은 늙은이의 얼굴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습지만, 나의 낙향은 꽤나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나는 부산에서 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고 비슷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분에 넘치는 기회들을 얻게 되었다. 나름대로 뿌듯했고 부모님 얼굴을 웃으며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내 그림은 언제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평가받았고 나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였고. 맨 처음 부산에 발을 디뎠을 늙은이는 다시금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청춘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급기야 좋은 남자를 만나 내 평생 단 한번도 꿈 꿔 보지 않았던 결혼을 하게 된다.

5년 간의 부산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의 작은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고 심지어 아이도 생겼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아,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한번 표현하자면 나는 결혼과 아이를 내 인생에서 단 한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성공과 인정받음에 목마른 욕망 덩어리일 뿐이었다. 결혼과 관련된 일들을 진행하며 나는 받아 마땅할 귀여운 수준의 비난과 비꼬움을 들어야 했고 나 스스로도 모순의 상황에 대해 사유(!)할 수 조차 없었다. 너무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자신에게 납득시킬만한 논리를 만들어낼 수도 없었다. 


십년이 조금 넘는 서울살이 동안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에 좌절했다. 공부를 계속 하면서 미술 작업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었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활동들로 나의 경력을 채워나갔다. 일반적인 그림이 아닌 대화와 토론으로 구성된 전시도 하였고 낯선 사람들을 알아나가는 프로젝트도 진행해 보았다. 사적인 이야기들, 개인의 경험, 눈빛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마침내 나는 그 모든 일들에서 지쳐버린다. 너무나 공허해서 말소리는 바람처럼 들릴 뿐이었다. 작업을 그만두기로, 더이상 예술가를 꿈꾸지 않기로 결심하였지만 나는 부산에 와서 엄청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내 모습이 우스워 보이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실망도 했다, 남들도 모르게. 

5년 간의 부산 생활은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과정이었다. 계속 전시가 잡혔고 쉴새 없이 그림을 그려야 했다. 힘들어도 웃음이 나는 좋은 시절을 나는 맞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피로를 느낄 수 밖에 없는 타이밍이 돌아왔고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은 그림 작업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알 수 없는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웠고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런 저런 딴짓들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 와중에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나에게 주는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서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나에게 없는 그 무언가를 그에게서 찾기로 결심한다. 


삶은 분명히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우리의 시간을 더욱 의미있고 가치롭게 만들어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예측 불가능한 일에도 수용 가능한 어느 정도 범위와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조금 비난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일들을 현재의 내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삶... 따위의 것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보이고 들리고 알게 되겠지 라며 스스로 토닥거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내 삶에 대한 여러가지 단상들은 의문처럼 내 귓가 주변을 떠돌기 마련이다. 과연 나는 이전의 삶에서 보았던 막다른 길의 통로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더 멀어져가는 나에 대해서도, 내 낯선 일상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족과 책임과 임무에 대해서도 찬찬히 느끼고 배워나가며 풀어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예측 불가능함에 대한 죄책감과 삶과 작업 속에서 열망하는 돌파구를 찾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믿어봐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