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에서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민초들은 정치가 아득한 먼 일처럼 한계로 느껴진다. 그러나 인류사회에서 문명의 발전 속에 정치야 말로 민중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필수요소임에는 의문이 없는 것이다.
현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기존 정치권력에서 밀려나 고뇌하던 시절, 그때의 윤석열이란 인물과 조선 중종 시대의 조광조와 관련을 지어 보았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지만 환희와 위기가 공존하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에 철 지난 글을 소환하여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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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내려보고 있다.
어디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뇨!
임금을 아버지같이 사랑했고
나랏일을 내 집 일같이 걱정했노라.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거짓 없는 이 마음을 훤히 비추리라.
1519년, 전라남도 화순군의 능주에서 조광조는 중종이 내려 보낸 금부도사의 사약을 받고 죽기 전에 쓴 절명시이다. 사약을 마시기 전 금부도사에게 여러 번 말미를 달라하며 창문 너머 자꾸 먼 길을 유심히 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사이 중종이 마음을 바꾸어 사사를 취소하는 또 다른 금부도사가 준마를 타고 헐레벌떡 도착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총애해 주던 주군이 위로의 편지한 장 전해주지 않고 정리를 끊어내는 임금이 매정스럽게만 느껴졌다.
금부도사의 재촉에 결국 사약 한 사발을 마시고도 죽지 않아 한잔 더 마시고 죽었다.
언감생심 꿈에도 예정 없던 임금의 자리를 반정 훈구파에 의해 용상에 앉은 뒤, 공신세력에 휘둘리던 중종이 조광조를 앞세워 신권 위로 왕권을 올려보고자 애를 써 보았다. 스승 김굉필의 가르침으로 성리학을 가슴속 깊이 뿌리내리고 개혁의 칼날을 사림이라는 깃발로 겁 없이 휘둘러 보았다. 이른 나이에 학식이 깊은 데다 젊은 혈기로, 임금의 뜻을 헤아려 해묵은 기득 훈구세력을 견제하니 처음에는 중종이 그를 매우 아끼고 총애하였다.
그러나 4년도 가지 않아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 임금의 뜻까지 어겨가며 반정훈구대신들의 공신책봉을 취소시키려 하자 드디어 기득권 세력의 반격과 중종의 눈에 벗어남으로써 사약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후세에 기묘사화라고 하지 않은가!
그 억울함을 절절히 써 내려가야 할 또 하나의 인물이 2020년, 이 조선반도에서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정 2품, 형조판서 아래 직급인 종 2품, 포도대장으로 파격승진 된 이후로 주군의 뜻에 따라 지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권의 하수인이었던 검찰의 내, 외부에서 개혁을 하며 임명권자의 칭송을 받을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통치권자의 판서임명에 제동을 걸고 그 비리를 파 헤치자 살아있는 권력, 현 실세의 시선이 싸늘해지며 주군의 눈을 벗어나고 있다.
임금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 정훈 공신들이 구차한 죄목을 들이밀며 스스로 물러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조광조 같은 아까운 인재가 잘못된 임금의 미움으로 희생될까 봐 여러 번 상소를 하여 잠시라도 태형으로 감면시킨 영의정 정광필이 있었지만 현시점의 정국대신들 중에 윤석열을 대변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