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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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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잼 Jul 18. 2023

아직 오지 않은 비

2023-07-18

예보라는 게 참 그렇다. 아직 그 상황이 닥치지는 않았는데, 그 상황을 대비하게끔 만든다.

예보의 목적 자체가 미리 대비하라는 의미니까, 당연하겠지만.

이 예측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경험이 쌓일수록, 데이터가 쌓일수록 예측이 맞을 확률이 올라간다.

비를 내리게 하는 수많은 요소가 있지만, 그 모든 변수에도 불구하고

이쯤 하면 '비가 내릴 거야!'라고 본능적으로 느낌이 온다.


기상 예보가 틀리길 바라면서 매번 외출할 때마다 우산을 두고 간다.

과거의 경험대로만 인생이 흘러간다면 재미없잖아, 하고.

그런 날은 꼭 흠뻑 젖어서 집에 돌아오거나, 새로운 우산을 하나 더 장만해서 덜렁덜렁 들고 온다.

그래도 오지 않은 비 걱정에 손에 짐을 늘리고 싶지는 않은 걸.

예보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 젖어버리는 건, 그 대가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그러다가도 마음에 드는 새 우산을 구매한 날에는 이 마음이 변덕스럽게 작용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며 우산을 매일 챙겨간다.

일기 예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가 안 온다고 하면 실망할까 봐 무시한다.

새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새 우산을 동동 두드리는 빗방울의 음색을 상상한다.


오지 않은 내일을 기대하는 심리는 통계와는 무관하게 작용한다.


이쯤 하면 그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법도 한데, 과거의 통계와 경험을 깡그리 무시하고 뛰고 있는 내 마음이 그렇다.

너 과거에도 이랬잖아, 잘 생각해 봐. 이러다가 네가 얼마나 힘들어했었는지 잘 떠올려봐.

그렇게 죽겠다고 울었잖아,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도 했었잖아.

그런데도 왜 또 설레는 거야, 바보같이!

새 우산을 사들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아랑곳없이 빈손으로 외출을 해버리는 날 징글징글하게 닮은 마음은 모든 경험과 통계를 싸그리 몽땅 무시해 버린다.


이 비에 흠뻑 젖어 또다시 허우적거릴지,

새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설레어서 잠 못 들어할지


물론 이 모든 건 예측일 뿐이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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