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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빛 Nov 06. 2024

현지에서 적응 잘하는 방법 2

   2023년 캄보디아 공휴일 일수는 총 21일이다. 같은 해 한국은 대체공휴일을 포함하고도 주말을 제외한 공휴일이 15일인 것에 비하면 정말 쉬는 날이 많다. 사실 이것도 2020년부터 지나치게 많은 공휴일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국경일 일수를 대폭 감소한 것이다. 그전에는 세계에서 공휴일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더 중요한 것은 달력으로는 빨간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근무지가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훈련 당시 쉬는 날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어 출근해서 굳게 닫힌 문을 보고야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에게도 일어날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출근했는데 교육청 문고리에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알려주지 않은 코워커를 원망하지 말자. 나에게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끼도록 내가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해 보자. 나 같은 경우 소속은 프레이벵 교육청이지만 활동지는 프레이벵이 있는 초등학교였다. 따라서 교육청에는 기관장님과의 상의가 필요하다거나 서류에 서명을 받는 일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출근해도 할 일이 없다. 임기 초반에는 내가 필요한 경우에만 교육청에 가곤 했다. 자, 그럼 이제 교육청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내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외국인이 봉사하겠다고 왔다. 나를 코워커로 지정해 주며 그 외국인을 잘 챙겨주라고 한다. 그런데 그 외국인은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 언제 오는지도 알 수 없다. 평일에도 잘 오지 않는 그에게 굳이 공휴일을 알려줄 이유가 있을까?

 잠긴 문을 멍하게 바라보다 집에 돌아왔다. 그들은 나를 같은 동료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다음 날부터 학교로 가기 전에 교육청을 꼭 들렀다. 외근을 나간 직원처럼 수업이 끝나면 교육청으로 돌아왔다. 할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행사가 있으면 행사 준비를 돕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수업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과 동료가 되자 연휴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나에게 물어봤다. 이번 휴일엔 뭘 할 거냐고 말이다.    

 프놈펜 국립소아병원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업무는 모니터링 외의 일은 사실상 재택이 가능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부서장 회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서장 회의에서 하는 말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웃을 때 따라서 웃기도 했다. 아무 말도 이해 못 하면서 매일 아침 연기하며 앉아 있기란 정말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항상 현지 의료진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동료로 인정받고 일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런 노력은 결과로도 눈에 보였기 때문에 코이카 본부에서 현장관리자가 꼭 필요하다는 걸 인정받아 현장관리자의 파견 기간이 연장되었다. 또한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캄보디아 간호사 면허증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언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웃픈 일화가 하나 생각난다. 나의 당시 캄보디아어 회화 수준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였다. 의료 통역 등의 고급 회화 수준은 못되었다. 나의 현지어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프놈펜 국립소아병원 교수님 중 한 명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어차피 재는 내가 이렇게 빨리 얘기하면 못 알아들어.’라면서 나를 조롱했다. 래퍼 아웃사이더도 울고갈 속사포2023년 캄보디아 공휴일 일수는 총 21일이다. 같은 해 한국은 대체공휴일을 포함하고도 주말을 제외한 공휴일이 15일인 것에 비하면 정말 쉬는 날이 많다. 사실 이것도 2020년부터 지나치게 많은 공휴일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국경일 일수를 대폭 감소한 것이다. 그전에는 세계에서 공휴일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더 중요한 것은 달력으로는 빨간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근무지가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훈련 당시 쉬는 날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어 출근해서 굳게 닫힌 문을 보고야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에게도 일어날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출근했는데 교육청 문고리에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알려주지 않은 코워커를 원망하지 말자. 나에게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끼도록 내가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해 보자. 나 같은 경우 소속은 프레이벵 교육청이지만 활동지는 프레이벵이 있는 초등학교였다. 따라서 교육청에는 기관장님과의 상의가 필요하다거나 서류에 서명을 받는 일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출근해도 할 일이 없다. 임기 초반에는 내가 필요한 경우에만 교육청에 가곤 했다. 자, 그럼 이제 교육청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내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외국인이 봉사하겠다고 왔다. 나를 코워커로 지정해 주며 그 외국인을 잘 챙겨주라고 한다. 그런데 그 외국인은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 언제 오는지도 알 수 없다. 평일에도 잘 오지 않는 그에게 굳이 공휴일을 알려줄 이유가 있을까?


 잠긴 문을 멍하게 바라보다 집에 돌아왔다. 그들은 나를 같은 동료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다음 날부터 학교로 가기 전에 교육청을 꼭 들렀다. 외근을 나간 직원처럼 수업이 끝나면 교육청으로 돌아왔다. 할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행사가 있으면 행사 준비를 돕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수업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과 동료가 되자 연휴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나에게 물어봤다. 이번 휴일엔 뭘 할 거냐고 말이다.    


 프놈펜 국립소아병원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업무는 모니터링 외의 일은 사실상 재택이 가능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부서장 회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서장 회의에서 하는 말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웃을 때 따라서 웃기도 했다. 아무 말도 이해 못 하면서 매일 아침 연기하며 앉아 있기란 정말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항상 현지 의료진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동료로 인정받고 일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런 노력은 결과로도 눈에 보였기 때문에 코이카 본부에서 현장관리자가 꼭 필요하다는 걸 인정받아 현장관리자의 파견 기간이 연장되었다. 또한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캄보디아 간호사 면허증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언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웃픈 일화가 하나 생각난다. 나의 당시 캄보디아어 회화 수준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였다. 의료 통역 등의 고급 회화 수준은 못되었다. 나의 현지어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프놈펜 국립소아병원 교수님 중 한 명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어차피 재는 내가 이렇게 빨리 얘기하면 못 알아들어.’라면서 나를 조롱했다. 래퍼 아웃사이더도 울고갈 속사포 말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나를 욕하는 말은 그렇게 또박또박 귀에 꽂힌다. 기분이 너무 나빴지만, 관계를 망칠 수 없어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하고 그날로 녹음기를 구매하여 목에 매달고 다녔다. 녹음기를 발견한 그 교수님은 그다음부터 한 번도 적어도 면전에서는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 솔직히 녹음기를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모형 CCTV와 같은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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