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은 왜 이렇게 다운되어 버렸을까요
정리되지 않은 삶이 이토록 미치게 싫었던 한 주가 아니었나. 상담을 하러 가기 전날 야근으로 막차를 타고 갈 정도로 일이 많은 상황과 순간들이 벅찼다. 업무도 업무인데, 삶이 참 버겁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고, 회사 업무와 학교생활과 일반 삶을 유지하기가 참 어려웠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삶이 벅차서 어디다 쏟아두거나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라도 터놓고 싶었나 보다. 상담을 받으러 가서 울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이야기할 거리들이 참 많은데,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어서 가야 할까 싶어지는 마음들이었다. 오자마자 나는 하소연을 하듯 내 상황들을 마구 나열했는데, 머릿속에 온통 업무와 해야 할 일들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겠다. 더 이상 어디 도망갈 곳도 없어서 벅차요. 하는 마음이었다.
새로 받은 업무는 정확성을 요하는 업무이기도 하면서, 말을 잘 나열해야 하는 업무이자, 기술을 설명해야 하는 신기한 업무이다. 뭐 업무적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가벼운 에세이처럼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업무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나는 무척 지저분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번역체라던가, 육하원칙이 배제된 어떤 글들을 쓴다거나, 주술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거나 하는 글들이 많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내 글을 써도, 퇴고를 하고 싶지 않아 지는 것은 주술관계나 육하원칙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졌다. 남들 잘하는 걸 왜 나는 못할까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던지라, 혼자 정리되지 않은 삶에 대해 엄청난 생각들을 했다. 방도 정리안되고, 스케줄도 정리되지 않고, 글조차도 정리되지 않은 내가 보여서 속이 상했다. 디자이너처럼 살고 싶었는데, 내 꿈도 정리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그마저도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다. 이제야 이야기하지만 나는 별달리 깔끔한 사람이 아닌 듯싶다. 삶에 여유가 반드시 필요한 건데, 그 여유를 배제하고 자꾸 어떤 것들을 채워가려고 애썼다. 없으니까 더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비움의 미학이라던가, 무(無)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여유로워야 가능한 일이니까. 내게는 없는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방에도 무언가를 채우려 했고, 내 안에도 무언가 자꾸 삽입하려 했다. 공간의 한정이 분명한데, 쑤셔 넣다 보면 들어갈 거야 라는 생각들을 해왔던 것 같다. 물론, 하지 않는 것에 비해하는 게 훨씬 났겠지만, 대책 없이 너무 벌려두기만 하는 것도 썩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날. 부정적인 감정들이 앞서서,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선생님한테 무척이나 많은 위로를 바랐던 것 같다. 사실 선생님도 사람인 건데, 사람인 선생님에게 신으로 대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어지기도 하다. 회기를 정리하면서 보니, 글로 쓴 내 말들이 끝맺음이 없이 흐름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애초에 대화를 하면서 문장으로 끝을 내는 경우보다 상황만 대충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구나, 그럼 이런 대화들은 비즈니스적인 대화로 이어지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결국 글에서도, 말에서도, 나의 정리되지 않음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했을 때, 선생님은 선택과 집중을 하는 걸, 어떨 땐 포기해도 되고, 포기하는 게 영영 포기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 말해주신지라 다행이었다.
포기할 것이 무엇일까 싶다가,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본다면 내 능력밖의 일을 요구하고 있는 업무를 내려놓기로 했다. 누가 봐도 이게 최선은 아니겠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최선인 것. 업무시간 외에 시간도 투자해서 적지만 너무너무 오래 걸린 만큼 성과가 안 나오는 일. 그러니 최선을 다한 것엔 후회가 없을 만큼이니까. 업무의 한계를 인정하기로 다짐한다. 그래, 내일은 야근하지 말아야지. 내일은 주어진 시간에 일을 다 해야지 한다.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 그럼 회사도 가기 싫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테니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이곳에서의 나는 그저 일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주 호소로 하고 있던 사람관계는 그다음이다. 일단 내가 바로 스스로 잘 서있어야 할 때다. 무엇을 하던 어떻게 하던, 확실히 내가 서있을 수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이번 상담에서는 나의 선택과 집중을 하는 한 주를 보내고 싶었고, 그렇게 선택할 것은 선택하고 집중할 것은 집중했다.
방에 짐이 또 늘었다. 책상을 중고로 들여왔다. 다만, 기능적으로 활용도가 좋은 녀석으로 데려왔고, 그 이후는 비워내야 할 일이다. 쌓아두고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두 개씩 다 꺼내서 정리하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하고 나는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나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내면 된다. 천천히, 습관은 원래 될 때까지 하는 거니까. 이번주는 그런 노력들을 하는 삶이길 바라본다.